사람이 사냥개를 시켜 사슴을 쫓게 하면 사슴은 반드시 재빨리 달아나고 개가 그 뒤를 쫓는다. 거의 물어뜯을 만하면 사람은 개를 불러 먹을 것을 주며 쉬게 한다. 사슴은 반드시 개가 이르기를 기다려 돌아보며 서있는다. 개가 다시 이를 쫓다가 또 앞서와 같이 쉬고, 사슴은 또 전처럼 기다린다. 무릇 여러 차례 이렇게 하면 사슴은 힘이 다하여 거꾸러지고, 개가 이에 그 불알을 물어서 죽인다. 이것은 인仁인가 신信인가?

곰과 범이 서로 싸울 때 범은 발톱과 어금니를 벌리고서 위세로 으르대니 그 힘을 씀이 온전하다. 곰은 반드시 사람처럼 서서는 우러러 키 큰 소나무를 꺾어 힘껏 내리친다. 한 번 치고는 버려서 쓰지 않고 다시 소나무를 꺾으니, 수고로움은 많고 힘은 나뉘어 마침내는 범에게 죽는 바가 되고 만다. 이것은 의義인가 정貞인가?

사람이 골짜기에 나무를 가로 걸쳐 놓고 나무에다 노끈으로 만든 올가미를 설치한다. 담비가 여러 마리 고기를 꿰고서 나무를 건너다가 먼저 가던 놈이 머리를 올가미 가운데 시험 삼아 들이밀며 기분이 좋은 것 같이 굴면, 뒤에 오던 놈이 앞을 다투어 머리를 들이밀어 잠깐 만에 주렁주렁 목매어 죽어 한 놈도 남음이 없다.

능히 곡진히하여 화통하지 못하는 자는 단지 명분 없는 일에 몸을 바치게 되니, 이것은 사슴이나 곰, 담비로 의관을 두른 자라 하겠다.

-이덕무, 「이목구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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