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노래

거리에서[기형도]

盜跖 2012. 8. 24. 20:18
거리에서
                                       -기형도

우리가 오늘 거둔 수확은 무엇일까 그대여 하고 물으면 

갑자기 地上엔 어둠, 거리를 疾走하는 바람기둥. 

그대여, 우리는 지금 出口를 알 수 없는 

巨大한 圖畵紙 위에 서 있다. 

제각기 하루의 스위치를 내리고 

웅성이며 사람들이 돌아가는 시간이면 

都市의 끝에서 끝까지 아픈 다리를 데리고 걸으면서 

우리는 누구도 時間을 묻지 않았다. 문득 

우리의 軌跡으로 그어진 꺾은선 그래프에 허리를 찔리우고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기에 어둠이 달려왔다. 

어둠이여 그러나 숨길 그 무엇이 있어 너를 부르겠는가 

빌딩 너머 몇 점 노을로도 갑자기 수척해지는 거리를 보며 

우리는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全身으로 서 있을 뿐이다 어둠이여 

왜 우리는 세상에 이 크나큰 빈 箱子 속에 툭 

툭 採集되어야 했을까 

팽팽하게 얼어붙는 한 장 바람의 形狀이 되어 

우우 어디로 가서 기댈까 

우리가 활활 消滅할 수 있는 未知의 불은 어디? 

우리는 都市의 끝, 그 바람만 줄달음치는 驛舍를 배회하였다. 

그러나 旅客運賃表로 할당되는 가난한 우리의 생. 

갈 곳은 황량한 都市뿐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낯선 도시 한켠에 주저앉아 휘파람 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 있을까. 

그 믿음을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늘 時間이 停止해 있는 도시. 

푯말 없이 오늘도 캄캄하게 버티고 선 

아아, 잎 뚝뚝 떨어지는 우리들의 도시. 

急流처럼 참혹하게 살고 싶었다, 우리 

現在는 언제나 삶의 끝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絶壁에서 뒤 돌아보는 

우리의 조용한 행적은? 

어둠이 靜寂의 보자기를 펄럭여 세상을 덮고 

온통 바람만 이삭처럼 툭툭 굴러다니는 都市에 

페이지를 넘기면 막 가을이구나. 

그대여, 秋收하기에 너무도 우리의 生은 이르다. 

그러나 우리가 寂寞으로 廢墟가 된 뜨락에 부끄럽게 설 때 

오, 그래도 당당하게 드러나는 

몇 움큼 퇴비로 변한 우리들의 사랑 

가자, 얼굴은 감춘 그대여 

個人으로 살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世上 

함께 가자, 어디에든 노을은 피고 바람 속에서 새벽은 오는 것 

이제는 일생을 걸어야 할 때, 지친 하루를 파묻고 일어서면 

캄캄한 어느 골목에선가 휘파람처럼 暴風처럼 

아아, 화강암 같은 時間의 호각 소리가 우릴 부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