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박노해

서릿발 허옇게 곤두선
어둔 서울을 빠져 북방으로
완호로 씌운 군용트럭은 달리고 달려
공포에 질린 눈 숨죽인 호흡으로
앙상히 드러누운
아 3·8교!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살아 다시 3·8교를 건널 수 있을까
호령소리 군화발길질에 떨며
껍질을 벗기우고 머리털을 깎여
유격복과 통일화를 싣고
얼어붙은 땅바닥을 좌로굴러 우로굴러
나는 삼청교육대 2기 5-134번이 된다.

핏발 선 분노도 의리도 인정도
군화발 개머리판에 작살나
제 한몸 추스리지 못해 웃음 한번 없이
깍지 끼고 땅을 기다 부러진 손가락
영하 20도의 땅바닥에서 동상 걸려 진물 흐르는 발바닥
얻어터져 성한 곳 하나 없는 마디마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벌건 피똥을 싸며
처음으로 소리죽여 흐느끼다
호르라기 집합소리에 벌떡 일어선다

눈보라치는 연병장을 포복하며
원산폭격 쪼그려뛰기 피티체조 선착순
처지면 돌리고 쓰러지면 짓밟히고
꿈틀대면 각목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내무반을 들어서면
한강철교 침상위에수류탄 철모깔고구르기
군화발로 조인트 까져 나뒹굴고
빼치카벽에 세워 놓고 주먹질 발길질에
게거품 물고 침몰해 가는
아 여기는 강제수용소인가 생지옥인가

그렁그렁 탱크이빨에 씹히는 꿈에 소스라치면
홍건한 식은 땀에 헛소리 신음소리
흐느끼는 소리 이를 앙가는 저주소리
그 속에서도 아직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자
우리는 밤마다 조심스레 가슴을 연다

김형은 체불임금 요구하며 농성중에
사장놈 멱살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
열다섯 난 송군은 노가다 일나간
어머니 마중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오고
딸라빚 밀려 잡혀온 놈
시장 좌판터에서 말다툼하다 잡혀온 놈
술 한잔 하고 고함치다 잡혀온 놈
춤추던 파트너가 고관부인이라 잡혀온 놈
우리는 피로와 아픔 속에서도
미칠 듯한 외로움과 공포를 휘저으며
살아야 한다고 꼭 다시
살아 나가야 한다고
얼어터진 손과 손을 힘없이 맞잡는다

날이 갈수록 야수가 되어
헉헉거리다 탈진하여
마지막 벼랑 끝에 서서
차라리 포근한 죽음을 갈구하며
따스한 속살내음을 그리며
단 한 순간만이라도 인간이고자
일어서 울부짖는 사람들은
무자비한 구타 속에 의무실로 실려가고
장파열 뇌진탕 질식사로
하나 둘 죽어 나가
뜬눈으로 가슴 타는 초췌한 여인 앞에
돈 많이 벌어올 아빠를 기다리는 초롱한 아가 앞에
360만원짜리 재 한 상자로 던져진다

민주노조를 몸부림치다
개처럼 끌려온 불순분자 이군은
퉁퉁 부은 다리를 절뚝이며
아버지뻘의 노약한 문노인을 돌봐 주다
야전삽에 찍혀 나가떨어지고
너무한다며 대들던 제강공장 김형도
개머리판에 작살나 앰블런스에 실려 나간다
잔업 끝난 퇴근길에 팔뚝에 새겨진 문신 하나로 잡혀와
가슴 조이며 기다릴 눈매 선선한 동거하던 약혼녀를 자랑하며
꼭 살아 나가야 한다고 울먹이던 심형은
끝내 차디차게 식어 버리고
일제시절 징용도 이보단 덜했다며
손주 같은 군인들에게 얻어맞던 육십고개 송노인도
홧통에 부들부들 뻗어 버리고
아무 죄도 없이 전과자라는 이유로 끌려왔다며
고래고래 악쓰던 사십줄 최씨는
끝내 탈영하여 백골봉에 올라
포위한 군인들과 대치하다가
분노의 폭발음으로 터져 날아가 버린다

악몽 속에 몸부림쳐도 떨치려 해도
온몸을 뒤흔들며 묻을래야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80년의 가을
개처럼 죽어간 자들의
시퍼런 원혼은 지금도 이 땅의 어드메를 떠돌고 있을까
가련한 살붙이와 여인네들은
이 휘황한 거리의 어디쯤에서 노점상으로 쫓기며
네온싸인보다 섬뚝한 원한으로 서려 있을까
그 많은 동기생들은
흐린 날이면 욱신대는 뼈마디 주무르며
지금쯤 어디 일터 어느 구석에서
삭아내리고 있을까
허연 칼날을 갈고 있을까

동상에 잘려나간 발가락의 허전함보다
철야 한번 하고 나면 온통 쥐어뜯는
폐차 직전의 내 육신보다 더 뼈저린 지난 세월 속에
진실로 진실로
순화되어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닌 바로 저들임을,
푸르게
퍼렇게
시퍼런 원한으로
깊이깊이 못박혀
화려한 조명으로
똑똑히 밝혀 오는
피투성이 폭력의 천지
힘없는 자들의 철천지 원한
되살아나
부들부들 치떨리는
80년 그 겨울
삼청 교육대



삼청교육은 1980년 제 5공화국 신군부가 전직 경찰 등 민간인으로 구성한 정화위원, 일부 군인, 경찰을 동원하여 수당을 지급하며 전국에 60.775명의 국민을 끌어다가 2만여 명은 돌려보낸 후 39.742명을 재판도 하지 않고 범법자로 매도하여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 군부대 연병장에 끌고 가서 총을 쏘아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으며 혹독한 고문과 몽둥이질로 인하여 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정신질환자,신체장애자가 되고 가정파탄과 가난으로 시달리게 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인권운동 사랑방 삼청교육대 인권운동연합
http://www.samchung77.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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