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 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의 사연을 말하기 위해 신경림은 이십년도 더 된 이야기를 꺼냈다. 길음동에 살았던 1986년 어느 날, 종종 들러 막걸리를 마시던 골목집에서의 일이다. “아줌마와 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딸이 상의 할 게 있다며 말을 걸어왔어요. 사랑하는 이가 있는데 지명 수배 중이라 도망을 다니는 중이라더군요.”

이 불운의 커플은 운이 아주 좋았다. 그 고백으로 신경림의 주례 하에 지하방에서나마 결혼식을 올리고 신경림의 축시까지 받아 들 수 있었다.

“술 한잔 한 김에 결혼식을 올려주겠다고 약속 했어요. 친구들 열명쯤 모아 놓고 했지요. 주례라고 거창할 게 없었고 1분 만에 마쳤습니다.”

신경림은 결혼식 후 감동에 젖어 「가난한 사랑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근래에 두 사람의 아이들이 대학에도 들어가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허허 웃었다.

시가 고전하고 있긴 하지만 시는 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신경림은 말한다. 소수에 의한 것으로서나마 가장 소수로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고, 그것이 시의 운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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