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기의 등장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곤 했다. 변방의 민족이 강력한 무기를 바탕으로 역사의 중심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번영하던 민족이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해 변방으로 밀려난 경우도 많았다.
활은 원거리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데다 휴대가 간편한 장점을 지닌 강력한 무기다. 화약병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가히 '최종병기'라 불릴 만큼 그 위력이 대단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겐 활과 관련한 얘깃거리가 많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우리를 동이족(東夷族)이라 불렀다. 큰 활을 쓰는 민족이란 의미인데 그만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당태종은 고구려의 화살에 한쪽 눈을 잃었고, 몽골 장군 살리타도 처인성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1274년 10월 19일,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일본 규슈의 하카다 만에 상륙했다. 일본은 규슈의 지방 행정 중심지인 다자이후(太宰府)를 지키기 위해 결사 항전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 사무라이들의 전쟁 수행 능력은 대륙의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몽골 및 고려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양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사무라이 하나가 앞으로 나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OOO의 아들이며, △△△에서 공을 세웠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십 발의 화살이 그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일본군 본진을 향해서도 화살의 비가 쏟아졌다. 당시 몽골군을 비롯한 대륙 군대의 전술은 활의 집중사격에 이어 기병이 적진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활의 사거리 밖에 있다고 생각했던 일본군은 당황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몽골과 고려군 각궁(동물의 뿔과 나무로 만든 복합궁)의 사거리는 185m 정도였던 것에 반해 나무로만 만든 일본의 활(단순궁)은 크기만 컸지 사거리가 80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활을 쏘다', 김형국) 몽골과 고려가 사용했던 복합궁은 상대에게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대적한 자들을 모두 지옥으로 안내했다.


고려 말 왜구가 강릉에 쳐들어온 적이 있었다. 당시 강릉의 말단 병사 중 이옥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려 말 간신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춘부의 아들이다. 이춘부가 살해되자 이옥은 병사로 강등돼 강릉으로 쫓겨났다. 그는 왜구가 쳐들어오자 명예를 되찾을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단신으로 말을 타고 해안의 왜구 진지로 달려가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통에 있는 화살(20발 남짓)을 다 쏜 이옥은 해안의 방풍림 속에 몸을 숨겼고, 분노한 왜구는 그를 쫓았다. 하지만 이옥은 전날 밤 숲 속 곳곳에 꽂아 놓은 수백 발의 화살을 뽑아 쫓아오는 왜구를 차례로 쓰러뜨렸다. 결국 왜구는 즐비한 사상자만 남긴 채 약탈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이옥은 그 후 복권돼 이성계 휘하에서 고관으로 승진했다.('동아비즈니스리뷰' 2010년 9월 1호, '전쟁과 경영', 임용한)


국궁을 얘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활과 조화를 이루는 화살이다. 화살은 그 길이와 굵기, 촉의 모양 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는데 국궁에 쓰이는 화살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것이 편전(片箭)이다. 우리말로 아기살로도 불리는 편전은 길이가 24∼36cm에 불과한 짧은 화살. 그대로는 활에 걸쳐 쏠 수 없고, 대나무를 반으로 쪼갠 통아(桶兒)라는 통에 넣고 쏘아야 한다.
편전은 최근 인기를 모은 영화 '최종병기 활'에도 등장했다. 영화에선 편전을 하찮게 여기던 청나라 오랑캐들이 주인공인 남이(박해일 분)가 날리는 편전의 위력을 맛본 뒤 두려움에 떠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편전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비밀 병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1491년 만주족이 평안도에 침입했을 때의 상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 군사가 처음에 장전(長箭)을 쏘았더니 저들이 뛰면서 피하기도 하고 그 화살을 주워서 도로 쏘기도 했다. 그래서 편전으로 쏘았더니 저들이 피할 수 없어 두려워했다."
편전의 가장 큰 장점은 엄청난 사거리였다. 편전의 사거리는 당시 각궁으로 쏜 일반 화살의 사거리 150∼200m와 비교해 월등했다. 임진왜란 때는 편전이 420m 넘게 날아갔다는 기록까지 있다.
관통력도 우수했다. 보통 일반 화살이 초속 50∼60m 수준이었다면 편전은 70m를 훌쩍 넘긴다. 물체의 운동에너지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편전이 강판을 뚫을 만큼 관통력이 뛰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황학정 실내 연습장에서 편전을 쏴봤더니 그 결과가 놀라웠다. 편전은 목표물인 압축스티로폼을 5cm 이상 뚫었다.
편전이 무서웠던 이유는 또 있었다. 화살 장인 양태현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편전은 길이가 짧아 상대가 화살의 궤적을 보고 쳐 내기가 힘들었어요. 또 적들이 주워 재활용할 염려도 없었죠. 무엇보다 편전은 날려도 통아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상대는 활을 언제 쏘았는지도 알 수 없었죠. 전장에서 일종의 착시 효과까지 유발한 무기가 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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