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골았다 .
술에 취한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짝 놔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사람.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시집 한 권 씩을 강제로 사게했다.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이 낸 시집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 달 1일 폐휴지 내는 날 신문지 뭉치 속에 이 시집을 끼워서 냈다.
두껍게 양장된 이생진 선생님의 시집은 꽤 무게가 나갔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때 내게 시집이라는 것은 하찮은 종이뭉치에 지나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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