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그물 고기잡이 시대가 발달한 후에, 전통적인 학교에 대한 불만이 일어났다. 그리고 곧 이런 불만은 교사들을 향하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교사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가 있었다. 어쨌든 그 시대 이후 교사의 지위와 준비과정이 어느 정도는 표준화되기 시작하였다.
  족 장들은 부족민의 평화, 번영, 안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규칙을 세우곤 하였는데, 그들은 교사들에게 자격을 나타내는 뼈(영양의 넓적다리 뼈)를 항상 휴대토록 하였다. 거기에는 교육학과 한 과목 또는 그 밖의 표준 교양과목에서 그들이 받은 ‘물고기 식사’(학점을 의미함)를 표시했다. 태고적부터 물고기는 식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한 물고기 식사에서 다음 물고기 식사 사이의 간격이 자연스럽게 교육을 이수했음을 측정하는 적절한 단위로 사용되었다.
  이에 따라 물고기 잡기 과목은 15‘물고기 식사’, 말 때려잡기 과목은 15‘물고기 식사’, 호랑이 몰아내기 과목은 12‘물고기 식사’ 등과 같이 초등, 중등 과정마다 이수해야 될 ‘물고기 식사’가 정해졌다.

  대학 강좌 초기에 교육학 교수들은 가르칠 주제가 매우 적었다. 그들은 학급의 조직과 운영에 대한 실질적인 힌트를 제공하고, 어떤 상황에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주먹구구식의 방법을 몇 가지 설정해주며, 그들이 알고 있는 훌륭한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육학 교수들의 조잡하고 유치한 일은 교과 전공자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생산적인 학문이나 체계적인 사고를 통해, 호랑이 수염에 사용할 타오르는 횃불의 신비한 요소나, 손을 빠져 나가려는 고기를 잡기 위한 엄지의 조작과 위치변화와 같은 문제에 일생을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학생들에게 교수방법만을 보여주려는 거짓된 학자들을 경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교육학에 대한 학문적인 경멸은 교육학 교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낮은 문화적 지위(?)에 자극받은 그들은 그들의 학문을 수준 있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첫번째로, 그들은 구석기 시대 대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학부 성원들에게 요구했던 전문화, 그리고 그 이상의 전문화를 요구함으로써 그들의 과목을 체계적으로 조직하였다.
  두번째로, 그들은 교육과 관계된 모든 것을 양적으로 세고 측정함으로써, 자기 집단의 모든 성원이 교육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를 요구하였다. 바로 이 부분이 교육학 교수들이 가장 위대한 용기와 창의력을 보여준 부분이었다. 미지의 작용과 미지의 속도로 서로를 계속 수정해 가는 미지의 수많은 요소들이 관련되는 학습상황을 측정하는 과제는 엄청난 일이었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 일에 착수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끝으로, 교육학 교수들은 그들의 과목을 배우기 어렵게 함으로써,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하였다. 이것 역시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학문적인 동료들이 했던 과정을 모방함으로써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그들은 그들의 과목을 논리적으로 조직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교수기법에 대한 일상적인 용어에 친숙해져 새로운 생각에 대해 무디어질 때까지, 그들은 교육학 과목의 실제적인 모든 교과를 미루고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과정을 먼저 제시하였고, 그들의 강의가 이해하기 어려워지도록 전문용어를 개발하였다.
  그리하여 교육학 과목은 존경받게 되었다. 그 과목은 다른 어떤 영역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다양한 전문가가 생겼다. 그러나 이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교육학 교수들이 교수법을 가르친 학생들 중 대부분은 그 기법을 실습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 상황에 반발하는 옛날의 ‘새 주먹’과 같은 몇 명의 사려 깊은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여보세요, 우리는 우리의 과목을 학문적으로 존경받게 하는데 성공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교육학 교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론 그렇죠.”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부모들은 시인을 했다.
  “그러나 당신들은 학교를 위해 더 나은 교사를 양성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어요. 사실, 우리는 갈수록 여러 측면에서 교육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육학 교수들은 이런 비난으로 괴로워했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교육의 목적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현 교육방법의 주요한 오류는 학습목표가 너무 많다는 데서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모든 목적과 행동을 스스로 추진하도록 두시오. 교사의 간섭이나 통제없이, 아이들이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자기가 목적했던 것을 계획하고, 자기가 계획했던 것을 실행하며, 자신이 한 것의 가치를 판단하게 두시오.”라고 그들은 교사들에게 권고했다.

  그러자 교사들은 불안해졌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개입해야 합니까?”라고 그들은 물었다.

  “교사들은 매우 중요한 안내자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옳은 활동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고, 아이들이 착수한 활동에 보다 지적이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교사 한 사람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음... 우리가 여전히 물고기 잡기를 가르치게 될 것임은 분명하군.”

  “그래.”
  다른 사람이 동의했다.

  그래서 학생들은 여러 세대 동안 물고기 잡기를 가르쳤던 학교의 따뜻한 물탱크를 타고 내려가서, 기초과정에서 이미 배운 동작을 처음부터 해보기 시작했다. 교사는 물탱크 가에 서서 학습자들을 안내하였다. 아이들은 즐겁게 웃고 물을 튀기었으며, 새로운 진보정신을 잘 알아차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학생들 중 하나가 학교를 빼먹었다.

  “뭘 했니?”
  “놀았어요.”
  “어디서?”
  “개울 아래 쪽요.”
  “뭘 하고 놀았지?” 교사가 다그치듯 물었다.
  “저... 물고기 잡기를 했어요.”
  “뭐?”
  “허. 기가 차는군! 세상에 누가 이런 소리를 들어 봤을까?  너는 회초리를 맞아야 해. 개울이라고! 그래! 맞는 너보다 내 마음이 더 아프다. 그래도 맛 좀 봐라. 맛 좀 봐!”

  아이는 훌쩍이며 말했다.
  “정말 제가 아는 한, 개울은 물고기가 있는 유일한 장소예요!”

 물론 학생들은 물고기를 잡지는 못했으나, 전통적인 교육에서도 물고기를 잡은 적이 없었기에 그 후로도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後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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