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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 로테 퀸은 독일 사람으로 저널리스트이자 네 아이들의 엄마이다.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는 학부모로서 그녀가 네 아이들을 키우며 직접 경험한 학교 교사들의 무능력, 나태안일, 냉소주의, 무관심을 질타하며 그들에게 내민 경고장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독일의 학교와 교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학부모들은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듯한 통쾌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 책은 학부모보다 교사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그러나 몇 군데에서는 교사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교사 집단이 가진 문제점으로 특화되어 서술되고 있다.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쁜 교사들’을 만나 어려움을 겪은 저자는 ‘교사로서의 결함’을 넘어 ‘자연인으로서의 결함’까지 교사의 자질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쁜 교사’에 대한 지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대칭점에 있는 ‘좋은 교사’의 모델 제시는 교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저술의 취지를 더욱 충족시켜줄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짧게 제시한 ‘좋은 교사’의 한 가지 사례가 있기는 하나 그 내용과 의미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저자의 아이들이 겪은 여러 교사들의 여러 가지 수업방식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평가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교사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럼 우리더러 어떻게 가르치라는 말인가?”

 이 책에 나타나는 독일 학부모의 자세는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다.
 독일의 학교, 교사, 교육청(상부기관)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학부모의 자세는 다른 것 같다. 이 책의 어디에도 “이래 가지고 우리 애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 식의 표현은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에서도 “우리 애가 김나지움 학생이라면 적어도 do와 make의 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표현, 말하자면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과정에 충실하려는 학부모의 자세가 우리나라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아, 우리에게 훌륭한 교육자를 주소서! 우리에게 아이들을 합리적으로 대하고 아이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으며 능력을 일깨워주고 소질을 키워주고 가르침과 모범으로 그들의 재능과 소명에 따라 될 수 있고 되어야 하는 존재로 만드는 그런 소질과 능력, 수완을 갖춘 사람들을 주소서.
-크리스티안 고트힐프 잘츠만, <개미의 책>에서

 아이가 기초를 충분히 익혀, 6년간 학교를 다니고 나면 읽고 쓰는 능력을 100퍼센트 갖추고, 장래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 닥치든 지속될 문화기술의 기초도 세워야 한다. 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비인간(非人間)은 학교에서 젊은이에게 잊지 못할 형상으로 크게 다가온다. 비인간은 거의 무한한 권력을 갖는다. 교육 지식과 오랜 경험으로 무장한 채 학생들을 자신과 꼭 닮은 인간이 되게 교육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망명자와의 대화>에서

 그러나 전체 교육제도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아서 아이들은 그 안에서 사이비적인 교육 행위에 따라 획일화된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 입구 위에 쓰여 있던 글귀를 오늘날에는 모든 교문 위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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