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 탑이 삼대 같이 자꾸만 일어서는 것은 반드시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궁핍에 우는 농민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들의 가슴 속에 양심의 수준을 높여 주어야 정말 종교인데 이 교회는 그와 반대이다. 교회당 탑이 하나 일어설 때 민중의 양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한 치 깊어간다. 그러기에 "예수 믿으시오"하면 "예수도 돈 있어야 믿겠습니다"한다. 이것은 악한 자의 말일까?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까? 석조전을 지을수록 거지는 도망하게 생기지 않았나? 교회당이 없었던들, 원조를 주겠다 해도 "아니요, 우리는 십년 후라도 우리 땀으로 짓겠소"했던들 그것은 불쌍한 자의 도피성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가 오늘 오신다면 그 성당, 예배당을 보고 "이 성전을 헐라!"하지 않을까? 본래 어느 종교나 전당을 짓는 것은 그 역사의 마지막 계단이다. 전당을 굉장하게 짓는 것은 종교가 먹을 것을 다 먹고 죽는 누에 모양으로 제 감옥을 쌓음이요, 제 묘혈을 팜이다. 내부에 생명이 있어 솟는 때에 종교는 성전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신라 말에 절이 성하여 불교가 망했고, 고려 시대에 송도 안에 절이 수백을 셋는데 그 후 그 불교도 나라도 망했고, 이조 때 서원을 골짜기마다, 향교를 고을마다 지었는데 유교와 나라가 또 같이 망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애급도 그렇고 바빌론도 로마도 그랬다. 그럼 성전이 늘어가면 망할  것은 누구인가?
 석조 교회당이 일어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종교 부흥이 아니다. 그 종교는 일부 소수인의 종교지 민중의 종교가 아니다. 지배하는 자의 종교지 봉사하자는 종교가 아니다. 도취하는 종교지 수도, 정진하자는 종교가 아니다. 안락을 구하는 종교지 세계 정복을 뜻하는 종교가 아니다. 이것은 지나가려는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이 뻔히 알면서도 아니 그럴 수 없이 일시적이나마 안전을 찾아보려는 자기 기만적인 현상이다.
 광야에 나가면 벌판에서, 바닷가에 가면 배 위에서, 밭에 가면 밭고랑에서, 길을 가다가는 우물 가에서 예배하는 종교, 목자 없는 양같이 헤매는 무지한 군중을 찾아 가르치다가 저물면 그대로 보낼 수 없어 많거나 적거나 간에 같이 나눠먹고, 밤이면 홀로 산에 올라 별을 바라보며 기도, 예배하는 종교, 그러한, 예수의 종교, 성당 없는 종교, 종교 아닌 종교는 지금 이 나라에 있나 없나?


-함석헌 (1956년 1월 사상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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