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고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기민당과 기사당의 노회한 보수주의자들 또는 독일농민연맹조차 교사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유연성과 개방성, 새로운 것에 대한 실험정신을 갖고 있다. 달리 어떤 직업에서 이미 누군가 지나가서 잘 다져진 길을 그토록 고집스럽고 나태하며 무지하게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 어느 교사나 사상적인 편협함을 아무 반대 없이 고수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뛰어난 전문지식인 양 내세우곤 한다.

"투쟁하는 자는 패배할 수 있다. 하지만 투쟁하지 않는 자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기본적으로 모든 교육학이 결국 세대 간의 관계로 귀결된다."
-하르트무트 폰 헨티히

 또한 학교는 본래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능력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졌다. 아이들에게 오로지 친밀하게만 대하고 반쯤 어머니 같은 온정만을 퍼붓는 교사는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런 지적 능력의 전수 과정을 억눌러버린다. 이런 과정이 정확히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것이 결핍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인식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군것질을 금지하고는 자신은 몰래 가방에 들어 있는 쵸코바를 먹는 교사는 학생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 모습을 이미 다 보고 그녀가 거의 매시간 습관적으로 통보하는 규칙들이 실상은 어떤 것인지 저마다 결론을 내린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결론이란 바로 '약자들을 지배하는 힘을 가진 자는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듣고 와서 "아무개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라며 꺼내는 이런 말들은 확실히 언제나 식탁에 헛소리만 옮겨다 놓는다. 교사가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웃기는 행동,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변명, 어리석은 발언들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식탁으로 날마다 정말 밀물처럼 밀려온다.
 내 아이들 가운데 최소한 한 명의 교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고 내가 그 진상을 알기 위해 당장 수화기를 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없이 지나가는 날은 거의 하루도 없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선생님은 어차피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아이의 과도한 상상력에 대해 몇 마디 익살스런 발언으로 나를 구슬릴 테니까. 아무튼 그들은 구슬리는 데는 세계 챔피언이다.
 그런 교사들은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기에 자신의 정치 투어에 아이들까지 끌어들이는 것일까? 나는 어른다운 교사를 소망한다. 어설픈 교수법 실험, 유아적인 애착, 덜 여문 종교적·정치적 태도에 편향됨 없이 말 그대로 '교사(敎師)'로서 자기 정체성을 획득한 교사를 원한다. 인격과 신념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며, 그럼으로써 신뢰와 확신을 줄 수 있는 교사를 원한다. 이런 토대 위에 서 있을 때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학생과 교사는 양쪽 다 스스로 선택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사적인 수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 그런데 교사의 경우 적어도 교사가 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자발성을 찾아볼 수 있는 반면에 학생에겐 약간의 선택권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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