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얘기를 해봐. 왜 나를 찾아왔는지."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나를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빤히 내려다 보았다.

"도움이라니?"

"날 죽여주세요."

(나는 돌아서서 가는 변진수를 불러 세웠다.)

내 앞에 멈춰 선 변진수의 목을 나는 권총으로 겨누었다. 공중전화 옆에서 연애를 하던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 정체된 시간을 새김질하던 노인들과, 혹시 길을 잃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초등학교 학생의 콧물수건처럼 전화번호를 가슴팍에 달고 철책 앞에서 오락가락하던 풍 맞은 할머니와, 사철나무 울타리 앞에서 사진을 찍던 젊은 남녀와, 청량음료를 팔던 가게주인이 무슨 영화라도 촬영하는 줄 알았는지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우리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촬영기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렸다.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변진수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또 한번 공포와 경악의 표정을 짓더니 부셔졌고, 총성이 아득하게 울렸고, 사람들이 놀라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안정효, "하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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