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내 돌아서고 나는 미리 준비해둔 깔깔한 슬픔을 껴입고

돌아왔다. 우리 사이 협곡에 꽂힌 수천의 기억의 돛대, 어느 하나에도

걸리지 못하고 사상은 남루한 옷으로 지천을 떠돌고 있다. 아아 난간마다 안개

휘파람의 섬세한 혀만 가볍게 말리우는 거리는

너무도 쉽게 어두워진다. 나의 추상이나 힘겨운 감상의 망토 속에서

폭풍주의보는 삐라처럼 날리고 어디선가 툭툭 매듭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떠나기 전에 이미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기형도, '비가2'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