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변의 재판

from 좋은글모음 2017. 10. 15. 16:45

손변이 경상도 안찰사가 되었는데, 그 고을에 남동생과 누이가 재산 문제로 송사를 벌이고 있었다. 남동생은 "한 부모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누이 혼자 재산을 갖고 동생은 그 몫이 없단 말입니까?"라고 하였고, 누이는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때 전 재산을 나에게 주고 네가 가질 것으로는 검은 옷 한 벌, 검은 관 한 개, 신발 한 켤레, 종이 한 장뿐이었으니, 어찌 이를 어기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송사가 여러 해 동안 해결되지 않았는데, 손변이 부임해 와서 이 송사를 듣고 이르기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균등한데 어찌 장성하여 결혼한 딸에게는 후하고, 어미 없는 어린 아들에게는 박하겠는가? 어린 아이가 의지할 자는 누이였으니, 만일 누이와 균등하게 재산을 물려주면 동생을 사랑함이 덜하여 잘 양육하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하게 되면 물려준 옷과 관을 갖추어 입고 상속의 몫을 찾기 위해 탄원서를 제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종이와 붓 등을 유산으로 남겨 준 것이다."라고 하니, 누이와 남동생이 서로 부여잡고 울었다.

-이제현, "역옹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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