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

from 좋은글모음 2017. 10. 25. 09:45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그럴 수 있지."

처음 그 말을 들은 것은 한참 음주가무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던 신입생 때였다. 12학번 선배의 입에서 처음 나와 공기 중으로 둥둥 떠다니던 그 말은 어느새 우리 모두의 입에 붙어 마치 마침표처럼 쓰이곤 했다.

가히 마법의 문장이었다. 때로는 농담처럼 쓰이기도 했고, 때로는 위로의 말로 쓰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를 훌륭하게 갈무리시켜주기도 했고, 때로는 괴상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의 기행을 비꼴 때 쓰이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말 끝에 붙어 있던 이 버릇은, 점차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가면서 내심 의미를 곱씹어 보게까지 했다.

그러면 또다시 내심 그 단어의 만능적인 쓰임새와, 그 문장에 담긴 관용과 존중의 정신, 그리고 자칫 무겁고 서툴러질 수 있는 그 관용의 철학을 짐짓 무심하고 시크하게 뱉을 수 있는 다섯 글자의 힘에 놀라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그 문장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문장의 무서운 힘은, 남에게 말할 때가 아니라 나에게 말할 때였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 속에도 버릇처럼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붙게 되면, 그 순간 내 인생은 꽤나 괜찮은 삶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과제를 못 끝냈어. 그럴 수 있지.

이번 달 방세를 못 냈어. 그럴 수 있지.

친구들이랑 사이가 틀어졌어. 그럴 수 있지.

그 여자애랑 잘 안 됐어. 그럴 수 있지.

힘없이 내 입술 앞에 떨어져 나뒹구는 그 말을, 그래도 어떻게든 주워서 질겅질겅 씹고 나면 그래도 기분이 좋아진다. 다, 그럴 수 있는 거니까. 사람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참 사람이 우울해 있을 때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안 돼. 일단 위로의 말부터 건네야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곧 죽어가는 환자한테 언제 효과가 날지도 모르는 3개월 치 식이 치료법을 들이밀면 되겠는가? 우선은 진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날도 역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날이었다. 카페에서 밤새 과제를 하다가 결국 데드라인을 넘기고, 새벽 7시에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나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정말 바쁘고 할 일이 많아서 과제도 미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낮에 뺀질거리고 미리미리 자료조사도 안 해놔서 딜레이가 됐다는 걸. 그러나 그런 현실을 당당히 마주하기에는 모멸감이라는 구렁텅이가 너무도 깊었다.

나는 또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을 한바탕 뱉어 대고는, 행복감에 젖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기어 들어와 쓰러져 자려던 참이었다. 아침 수업은 일찌감치 드랍했으니, 지금부터 푹 자고 나서 점심쯤 일어나 대충 라면 끓여먹고 2시 수업을 가면 딱 맞겠다는 계산까지 해 둔다. 과제를 딜레이했다는 생각은 이미 저 편으로 날아가고 과제를 끝냈다는 성취감, 그리고 뭔가 나름대로 인생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이 밀려온다. 문득문득 고개를 내미는 자아성찰의 계기는, 그 놈의 '그럴 수 있지' 에 쑥 들어가 버린다. 그래, 진통제부터 맞고 치료를 해야지.

그러다 돌연 갑자기 소름이 돋은 것은 그 진통제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을 때였다. 진통제를 주사기에 담아서, 팔을 꽉 묶고 이를 앙 다물고 혈관을 더듬더듬 찾아서 한참을 주사한다. 고통으로 얼룩졌던 표정이 황홀경에 젖고 이내 주사기를 떨어뜨린 채 행복감에 젖어, 미처 주사자국을 지혈할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쓰러져 약기운을 빌어 자는 것이다.

나는 확실히, '그럴 수 있지'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은 잔잔한 마음을 요동치게 해 준다.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요동친 마음을 잠재워 준다.

그러나 제 자신을 바꾸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던 생각은 '그럴 수 없다'는 것에서 늘 출발해 왔다. 살아가다 보면 내 삶은 '그럴 수 없는' 것들로 늘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나는 외면했을 뿐.

나는 '그럴 수 있지'에, 너무도 완벽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나는 그간 대학 생활을 버티게 해 준 마법의 구호이자 내가 늘 찾아가곤 했던 따뜻한 요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 같은 아득함에 고시촌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해가 이미 떠버린 쌀쌀한 새벽 7시에 망연히 서 있어야만 했다. 사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되었다는 허탈감보다는, 앞으로는 '그럴 수 없는' 것들과 맞서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두려움과 무력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조용히 자취방에 들어와서, 평소와는 다르게 옷을 개고 이불을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해가 벌써 중천에 떴지만 블라인드를 치지 않았다. 터져 나오는 한숨을 억지로 힘겨이 삼키며, 애초에 일어나려 했던 1시 알람을 10시로 당겨 맞췄다.

오래된 보일러에서 나는 중구난방의 방바닥 온도, 11월인데도 아직 기승을 부리는 모기 피로 얼룩진 천장,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집안 물건들, 퀴퀴한 자취방 속에 조용히 담겨 눈만 끔뻑, 끔뻑,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