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야구도하기

from 좋은글모음 2018. 5. 13. 15:10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와 바위에 부딪치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 구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내달리고 부딪치고 뒤집어지며 울부짖고 으르렁대고 소리 지르니, 언제나 만리장성마저 꺾어 무너뜨릴 기세가 있다. 만 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 대의 대포와 만 개의 북으로도 그 무너질 듯 압도하는 소리를 비유하기엔 충분치 않다. 모래위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니 저만치 떨어져 서 있고, 강가 제방엔 버드나무가 어두컴컴 흐릿하여 마치도 물 밑에 있던 물귀신들이 앞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할 것만 같고, 양 옆에서는 교룡과 이무기가 확 붙들어 낚아채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황하가 이렇듯이 운다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깊고 지극한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박지원,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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