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태조 주원장이 방국진과 전쟁을 벌이던 시절, 한번은 주원장이 절강 괄창산 청풍사를 지나다가 절에 들어가 물 한 사발을 청하여 마신 일이 있었다. 절의 주지는 주원장의 관상을 보고는 비범하다고 여겨 거듭해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주원장은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절 담장에 4구의 시를 써내려갔다.

강남의 백만 병사를 모조리 죽이고
허리춤의 보검에는 피도 아직 마르지 않았건만
산 속 승려는 영웅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직도 조잘대며 성가시게 이름을 묻는구나.

그는 시를 다 쓴 뒤 붓을 홱 던지고는 떠나갔다.
절의 승려들은 주원장의 무례함에 크게 화가 나서 담장 위에 써놓은 시를 물로 씻어버렸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석 달 뒤, 주원장이 방국진을 평정하고 군대를 귀환하면서 일부러 청풍사에 들렀던 것이다. 승려들이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고 있자 절의 주지가 급하게 꾀를 내어 원래 시가 쓰여 있던 자리 옆에 새로운 시를 썼다. 

황제께서 손수 쓰신 시를 감히 남겨둘 수 없도다.
남겨둔 뒤에 귀신의 근심을 살까 매우 걱정되는구나.
그리하여 법수로 가볍게 씻어냈더니
오히려 신광이 나타나 두우성을 찌르는구나.

주원장은 이 시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절의 이름을 '황룡사'로 바꾸고 현판 글씨를 하사했다.
절의 승려가 '처음에 거만했던 것'은 주원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주원장의 시를 지워버린 이유는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했기 떄문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천하가 누구의 손에 들어갈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원장이 돌아온 뒤에 서둘러 4구의 시를 덧붙여 '뒤늦게 공손함'을 보였으니, 그렇게 죽음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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