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자신이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껴보았는가?

 베로니카는 이름깨나 알려진 프랑스 잡지사에다 슬로베니아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냐고 따지는 이상한 편지를 보내고, 4통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한다.

 파울로는 웃었다.

 "그런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은 없어."

 베로니카가 눈을 떴을 때 입과 코에는 생존기구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심장과 머리에는 전극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당신의 심장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어요. 심실에 회저(신체 조직의 일부가 썩어 기능을 잃는 병)가 있고... 그래서 머지않아 박동을 멈추게 될 겁니다."

 "언제쯤이요?"

 "닷새, 아니면 길어야 일주일."

 베로니카가 깨어난 곳은 빌레트였다.

 빌레트는 일반병원이 아닌 정신병원이다.

 코엘료는 왜 베로니카를 정신병원으로 보냈을까?

 그리고 베로니카는 왜 정신병원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게되는 걸까?

 빌레트에서 베로니카는 제드카, 에뒤아르, 마리아, 그리고 이고르박사를 만난다.

 "한 왕국을 무너뜨리려고 마음먹은 마법사가 있었어. 그는 그 왕국의 백성 모두가 길어 먹는 우물에 미쳐버리는 묘약을 풀었어. 백성들은 모두 미쳐버렸지. 그러나 왕실의 우물은 따로 있어서 마법사도 접근할 수 없었대. 그날부터 왕의 명령을 접한 백성들은 왕이 미쳐버렸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모두들 궁궐로 몰려가 함성을 지르며 왕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했대. 그러자 왕비가 왕에게 이렇게 제안했어. '우리도 우물로 가서 그 물을 마셔요, 그러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아질 거예요.'"

 "한 집단이 전쟁이나 초인플레이션, 혹은 페스트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자살자의 증가는 아주 미미하고 우울증, 편집증, 정신이상 환자들도 확연히 감소한다. 하지만 어려움이 극복됨과 동시에 그 수치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인간은 각종 조건들이 양호할 때에만 정신이 이상해지는 사치를 부린다는 것이다."

 "그래, 넥타이야! 네 대답은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상적인 사람의 대답이지. 하지만 미친 사람은, 복잡한 방식으로 매달려 있는, 우스꽝스럽고 아무 쓰잘 데 없는 알록달록한 천조각이라고 말할 거야. 숨쉬기 어렵게 만들고 머리의 움직임을 방해할테니, 정신을 딴 데 팔며 환풍기 곁을 지나가다가 이 조그마한 천조각 때문에 질식해 죽을 수도 있다고 말야."

 "에뒤아르. 만에 하나라도 언젠가 내가 이곳을 나갈 수 있다면, 난 감히 미친 여자가 될 거야. 모든 사람들이 미쳤으니까. 가장 못한 것은 자신이 미쳤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들이 그들에게 명령하는 걸 마냥 반복하면서 살아가니까."

 "나스루딘의 강연은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그러나 오후 4시가 되어도 나스루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입장료 환불을 요구하고 하나 둘씩 강연장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자 1700명의 관객이 백 여 명으로 줄었어요. 그 때 나스루딘이 들어왔죠. 그러나 수피즘의 큰 스승 나스루딘은 맨 앞 줄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농을 걸기 시작했어요. 야유와 웅성거림이 들려왔지만 나스루딘은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사람들은 항의와 욕설을 퍼부으며 강연장을 떠났습니다. 다들 나가고 아홉 사람만이 강연장에 남아 있었죠. 그러자 나스루딘이 벌떡 일어났어요. 그의 눈은 빛을 발하고 있었어요. '여기 남아 계신 여러분은 정신의 길을 나아가는데 가장 힘든 두 가지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제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그 하나요, 여러분이 찾은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그 둘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제 가르침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신은 다르게 행동했다. 신은 법을 정해놓고, 오로지 벌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법을 어기라고 누군가를 부추킬 방법을 찾아냈다. 신은 아담과 이브가 낙원의 완벽함에 결국은 싫증을 낼 것이고, 조만간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전지전능한 그 역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상태에 진력이 나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브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수백만 년 동안 과연 어떤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랬다면, 신은 왜 그 나무를 천국의 담 바깥이 아닌 정원 한가운데에 심어놓았을까?"

 "남편들은 외지인이 제 아내를 범하는 것을 보고 싶어했고, 아내들은 남편에게서 간통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자위를 했다. 가정주부들은 초인종을 누르는 첫번째 배달원에게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다스려야만 했고, 아버지들은 국경의 엄격한 검문을 가까스로 통과한 흔치 않은 여장남자들과 나눈 은밀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제 사랑에 대해선 아무 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사랑에 질려버렸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충고에 따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인간을 그 자신의 꿈에서 분리시키는 심연을 건너버려, 더이상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무대를 떠나버리는 것이 간단했다."

 이고르박사에게는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베로니카에게 페노탈이라는 약을 투여함으로써 심장발작 효과를 일으키게 하였다. 죽음에 대한 자극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 그러면 정신질환을 유발시키는 독성 물질인 비트리올을 스스로 제거해 나갈 것이라 믿었다.

 이고르박사의 시도는 성공했다.

 "'아마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조금 전에 네가 말했듯이, 나도 널 사랑한다고 네게 말해주고 싶어. 믿지 않아도 좋아. 바보짓일지도 모르지. 내 환상들 중 하나거나.' 베로니카는 에뒤아르의 품에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믿지 않는 하느님에게 자신을 이대로 데려가달라고 빌었다."

 코엘료는 '베로니카'를 통하여 빌레트 안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를 서로 바꿔놓으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정상인(?)의 자세로 돌아온다. 현실과의 타협인지, 통속적인 귀결인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좀 더 치열하게 빌레트 안의 세계에 파고 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아포리즘을 찾으려는 것은 헛된 시도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집은 당신은 행운아다. 잠시나마 뤼나티크의 몽환에 젖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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