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화두를 꺼내는 까닭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각종 통계와 지표를 제시하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이제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조차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상대적 빈곤감, 상대적 박탈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그런 느낌에 대해 짚어나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우리를 함께, 그리고 평화롭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양극화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나는 19세기에 쓰여진 헨리 죠지의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 이 더러운 하수구로부터 전세계를 비옥하게 만드는 인간의 땀의 강물이 흘러나오며 순수한 황금도 흘러나온다. 인간이 가장 애써 이룩한 이 문명이 그 기적을 이루는 바로 이곳에서 인간은 야만인으로 되어 버렸다."[알렉시스 드 토크빌]

 확 실히 공장제 기계 공업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생산력은 인류에게 빈곤과 야만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 생활이 더 편리하고, 더 안전하며 풍요롭게 될 가능성이 활짝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을 뿐이었다. 현실은 어떠했는가?[산업혁명의 빛과 그늘, zeno12  (2003-09-08 01:31)]

 헨 리 죠지의 [진보와 빈곤](1879)은 ‘맨체스터의 노동자 거주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공장 폐수로 오염된 시커먼 강물’로 연상되는 시대, 최저 12시간에서 14시간 심지어 16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극도의 저임금으로 노동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던 절대적 빈곤이 지배하던 시대의 담론이다.

 그러나 내가 이 낡은 19세기의 화두를 꺼내는 까닭은 진보의 이면에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다. 헨리 죠지가 분석했던 도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담 스미스, 리카르도, 맬더스를 딛고 비밀스럽게 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헨리 죠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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