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이 가장 불행했던 시대는 언제일까? 아마도 조선시대가 아닐까? 신라시대는 여성이 왕위에 오르는 일이 가능할 정도였으며 고려시대만 하더라도 남녀간의 사랑이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왕실에서조차 재혼이 가능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남녀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랴. 그런데 고려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부터 여성의 지위는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성리학은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상체계였기 때문이다. 이는 곧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나타났다


딸을 낳으면 지나가는 새우젓 장수도 섭섭해한다

─ 남존여비와 삼종의 도 ─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를 억압했던 것은 '남존여비(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와 '삼종의 도(여렸을 때는 아비를 따르고 출가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른다)'라는 악습이었다. '아들을 낳으면 상 위에 누이고 구슬을 준다. 그러나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누이고 실패를 준다'는 말처럼 태어날 때부터 아들과 딸은 서로 다르게 길들여진다. 출생부터 귀천이 갈라지고 차별대우가 시작된다. 그러니 '딸을 낳으면 지나가는 새우젓 장수도 섭섭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딸이 부모 밑에서 자랄 때는 괜찮은 편이다. 여자로 태어난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때는 출가한 다음이다. 이른바 '여필종부'라 해서 여자는 항상 말 없이 남편을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남편을 손님처럼 받들고 '소금섬을 지고 물로 끌라'해도 남편의 말은 복종해야 한다. 남자들은 수탉같이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리면서 여성들에게는 목숨보다 정절을 중히 여길 것을 제도화시켜 놓았다. 뿐만 아니라 질투를 해서도 안되고 여성의 너그러운 아량(?)으로 처첩 간에 사이좋게 지내도록 강요되었다.


여자의 무식함은 오히려 덕이 된다

─ 무학과 유순의 미덕 ─

 그러한 사회제도 하에서 똑똑한 여자는 그 제도의 파괴자로 배척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자의 무식함은 오히려 덕이 되었다. 여자는 글을 알아도 함부로 쓰지 아니함을 미덕으로 여겼고, 아들에게는 글을 가르치되 딸에게는 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가르친다 해도 기초적인 교양 정도였다. 여자의 글은 문밖에 내어가지 않고 모두 불태워버렸다. 허균의 누이이자 여류시인이었던 허난설헌도 죽기 전 방안에 가득했던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소각시켰다고 한다. 그러면 오늘날 전해지는 허난설헌의 작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허균이 누이의 유작을 중국 사신에게 자랑삼아 보였던 것이 중국 사신에 손에 의하여 중국에서 출판되어 역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여자는 유순함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았다. '아들은 이리같아도 오히려 약할까 걱정하며 딸은 쥐같아도 오히려 범같을까 걱정한다'는 말처럼 여자에게는 '유순'과 '공경'만이 으뜸의 덕이 되었다. 이는 곧 남편의 말을 하늘같이 받들고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으로 나타났다. 여성에게 강요된 덕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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