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多)민족 국가들의 붕괴와 중국의 위기의식 고조


 중국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뼈아픈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수나라를 멸망으로 이르게 한 고구려, 7세기 수도 장안까지 압박하며 唐나라를 괴롭혔던 티베트, 대륙을 정복하고 중국을 지배했던 몽골(元), 중국 인구의 10분의 1도 안되면서 260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淸) 등은 중국인들에게 지울 수 없는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1990년대 초 세계 최대의 다(多)민족 연합 국가였던 소비에트(舊蘇聯)가 13개의 민족 중심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한 후 한순간에 힘을 잃고 몰락하는 과정을 보고 중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 또한 구소련과 다를 바 없는 다(多)민족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만주제국(MANCHU-LIA), 내몽골국(內蒙古國), 신강 위그르국(新疆UYGUR國), 티베트국(TIBET國), 타이완국(臺灣國) 등의 독립 운동을 영구히 저지하고, 그들을 중국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대규모 역사 강탈 작업을 추진한다.


중국 내 소수 민족의 역사 강탈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의 추진


 중국은 통일적 다(多)민족 국가의 유지를 위해서 민족의 구분을 떠나 “현재 중국 땅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중국의 역사다.”라는 원칙을 세우고, 타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틀 속에 끼워 맞추고 있다. 이것이 중국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역사 강탈의 핵심이다.


 1986년, 티베트 고유의 역사를 지워버리기 위한 ‘서남공정’, 1994년 ‘몽골의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는 엉터리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징기스칸마저 중국 소수 민족의 한 사람으로 둔갑시켜버린 ‘외몽골공정’에 이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의 일부분으로 만들기 위한 ‘동북공정’까지, 이 모든 작업들이 하나의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정치적 해석과 함께 힘을 잃어가는 동북공정 대응 논리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고구려는 예맥족이고 백제와 신라는 한(韓)족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족이라는 것인데, 이는 마치 서울의 강남족은 서울의 강북족과는 서로 다른 종족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소위 학자라는 탈을 쓰고서도 고구려 시조 주몽과 그의 아들인 비류대왕과 온조왕의 관계를 몰랐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2000년대 들어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매우 높았다. 외교적 대응을 촉구하는 여론이 고조되는 한편, ‘역사교육 강화’라는 아젠다가 사회적 담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동북공정’이 중국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면서 적극적인 대응을 회피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동북공정 이후 먼 훗날엔...


 ‘동북공정’이란 중국의 고구려사 강탈 문제를 보면서 과거 중국의 역사 기록 자체의 신뢰도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동이족 내부의 권력 투쟁과정에서 새로 탄생한 기자(箕子)정권을 마치 중국이 책봉한 것처럼 기록하는 행태 등은 앞으로 우리가 중국의 기록을 다루는 데 있어 신중한 자세가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경우, 일정 부분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기록 보다는 중국, 일본의 기록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조선 초기 단군 및 그 이전의 우리 역사 사상() 이 기록된 많은 책들을 감히 중국보다 앞섰다느니, 요사스런 책이라느니 하며 금서로 여기고 거둬서 불태워버린 경솔한 행동이나, 식민지 시대 역사 연구에 있어서 피해자들의 증언이나 기록보다 총독부의 기록이나 관보를 더 중시하는 연구 집단의 활동에 잘 나타난다.


 먼훗날 이른바 강단사학자들이 사료와 기록을 대하는 태도가 지금과 같다면, 중국에 의해서, 또 일본에 의해서 왜곡·날조된 엄청난 기록 더미에 우리 역사학자들은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그들이 쏟아내는 기록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근거를 남겨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 움직일 수 없는 근거와 자료들을 발굴, 정리, 체계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역사는 단지 학문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강탈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복속시키고자 함이다. 유태 민족이 2천년 유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토라’와 ‘탈무드’라는 훌륭한 국민정신의 교범을 중심으로 민족의 단일성과 응집력을 견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흔들리는 민족의 정신적 토대를 굳건히 하고 다가올 미래의 도전에 대비해야만 한다.


※참고- 김산호, "단군조선", 다물넷,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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