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실학과 경제학의 거두였던 성호 이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이 적합할까? 후대의 학자는 그를 끊임없이 퍼내도 ‘마르지 않는 실학의 샘’이라 하였으며, 또 무수한 학문의 별들을 품어 길러낸 ‘별들의 호수(星湖)’라고도 하였다.

 이익은 유교와 역사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인물, 사건, 사상, 시와 문장, 천문, 자연과학, 지리, 풍속, 문화 등 학문의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하고 풍부한 저술을 남겼다. 이는 학문의 방향을 넓게 잡아 세계와 사회를 총체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서, 이수광의 [지봉유설]의 뒤를 잇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대의 사회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은 이익의 영향력, 즉 [성호사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익은 폭넓은 저술이 가능했던 배경인 독서에 대하여 알아보자. 먼저 이익은 독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어려서부터 배우는 이유는 어른이 된 후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다. 이때 독서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옛 성인과 현자들의 글을 읽고 의로움을 좇는 사람이라도 사람마다 보고 얻는 데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부터 벼슬과 이름을 얻어 세상에 크게 드러난 사대부들 가운데 평생토록 배운 것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일을 실행에 옮길 때와 말할 때의 처신이 같지 않고, 또 다른 사람과 나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더러는 위세와 권위에 억눌리거나 여러 무리의 꼬임에 빠지기도 하고, 더러는 당시 상황에 쫓겨 다급하여 그렇게 되기도 한다. 또한 이익과 욕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지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욕심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사물에 대한 욕심이 사람의 선한 마음을 눌러 양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양심이 이동하면서 일 역시 옮겨간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해 옛 성인들의 판단이 존재하고, 이전 시대의 역사가 증명한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욕심이 항상 마음속에 걸려 있어서 일이 다르고 시대가 같지 않다는 변명꺼리만 보일 뿐 마땅히 간직해야 할 선한 마음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다. 이에 잠깐 동안 일의 방향이 바뀌고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이 변한다. 이렇게 보자면 큰일에 부딪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때 반드시 벼슬과 녹봉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야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요점이다.

 이익에게 독서란 오직 ‘앎’을 터득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옛 사람들의 독서 목적은 크게 과거를 위한 것과 성현이 되기 위한 두 가지였다. 이 중에서 과거를 위한 독서는 그리 높이 쳐주지 않았다. 이익도 과거를 위한 독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뭔가를 얻어 보겠다는 목적으로 독서하는 사람은 아무리 읽어도 소득이 없는 법이다.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질 지경에 이르도록 독서를 해도, 일단 글 읽기를 멈추면 마치 장님이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캄캄해진다.

 물론 이익이 과거를 위한 독서를 이렇게 비판한 것은 벼슬길과 멀리 떨러져 있던 자신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이익의 시대는 당쟁이 극에 치닫던 시기였다. 아버지 이하진은 경신환국에 휩쓸려 유배지에서 죽고, 이익에게 글을 가르쳤던 중형 이잠은 임금에게 상소한 내용이 문제가 되어 장살당하였다. 아버지에 이어 자신이 가장 존경한 둘째 형 마저 당쟁의 칼바람 앞에 무참하게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이익은 정치의 냉혹함을 절실히 깨닫고 입신양명의 뜻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이때부터 이익은 주자 성리학과 과거 급제를 위한 학문의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와 인간, 그리고 사회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더 넓고 깊은 학문의 바다로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익의 집안에는 아버지 이하진이 1678년 청나라에서 사온 수천 권의 장서가 있었고,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제자들과 토론하고 문답하며 ‘성호 실학’의 힘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익은 독서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독서를 할 때는 상서로운 동물인 봉황이 우연히 산모퉁이에 이르렀는데 걸음이 너무 느려서 보지 못할까 걱정하는 마음처럼 책을 보지 못할까 염려해야 한다. 책을 볼 때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여겨야 한다. 또 독서를 하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학문을 강의하고 토론할 때는 유명한 의원에게 아픈 자식의 치료법을 묻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독서를 하다가 마음 속에 깨달음이 있을 때는 더위를 만나 갈증이 심할 때 길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하고, 독서를 통한 깨달음을 실천할 때는 보검을 갈아 시험 삼아 베어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 이것을 일러 눈으로 보고, 입으로 굴리고, 마음으로 운용하고,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 모두 딱 들어맞는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익은 독서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내가 일찍이 어떤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글 읽는 책상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판자가 눈에 띄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누워서 글을 읽는 책상이라고 했다. 내 생각으로는 글을 읽을 때는 정신을 가다듬고 단정히 앉아도 도리어 잠이 쏟아져 막을 수가 없다. 하물며 누워서 책을 보는 것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글을 읽는 책상 앞에서 떡 벌리고 앉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앉는 자세는 이미 글을 읽겠다는 본뜻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태도가 아닌가? …… 전해 오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어떤 부인이 어린아이를 재우려고 책으로 얼굴을 덮어 주더라. 또 어떤 사내가 나워서 책을 얼굴에 대고 보다가 즉시 잠이 들더라. 이에 나도 책을 얼굴에 덮고 잠이 들려 한다.” 이 또한 사람을 웃게 만든다.

 누워서 책을 보겠다는 것은 누워서 자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바른 자세 속에 성실한 마음이 깃든다. 흐트러진 자세로 투철한 정신을 얻을 수는 없다. 18세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작은 휴대용 소책자가 조선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수진본(袖珍本)이라 하여 크기가 소매 속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았는데, 책의 크기가 작다 보니 성현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누워서 보는 이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어찌 감히 성현의 말씀을 자리에 누워서 볼 수 있느냐고 책의 수입을 금지시킨 일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반듯한 자세로 책을 보는 이도 드문 상황이니, 이익의 가르침은 세월을 넘어서 따끔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이익은 독서를 ‘앎과 실천’을 겸해서 한 말이라고 하였다. 앎이 있어 행함이 일어나고, 행함이 있어 앎이 완성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의 독서법에 대해서 많이 알고 큰 감흥을 얻는 것은 더 큰 공부로 나아가기 위한 소중한 과정이다. 그러나 알기만 하고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앎이 아닐 것이다. 옛 사람의 독서법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지금, 자세부터 반듯하게 바로 잡자.


고등학생을 위한 역사도서 길라잡이

-역사와의 만남과 소통
교육인적자원부
광주광역시교육청
2008.1.22 (주)성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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