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조선의 사절단이 북경에 도착한다. 그런데 황제는 이미 만리장성 밖 열하(熱河)로 피서를 떠나 있었다. 황제는 조선 사절단에게 날짜를 정해 놓고 열하까지 오라고 명을 내린다. 빠른 길을 찾아 재촉하다보니 큰 비에 물이 불어난 황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씩이나 건너는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다. 이때의 소감을 적은 글이 바로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이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나와 바위에 부딪치며 사납게 흘러간다. 그 놀란 파도와 성난 물결, 구슬피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내달리고 부딪치고 뒤집어지며 울부짖고 으르렁대고 소리 지르니, 언제나 만리장성마저 꺾어 무너뜨릴 기세가 있다. 만 대의 전차와 만 마리의 기병, 만 대의 대포와 만 개의 북으로도 그 무너질 듯 압도하는 소리를 비유하기엔 충분치 않다.  모래위에는 큰 바위가 우뚝하니 저만치 떨어져 서 있고, 강가 제방엔 버드나무가 어두컴컴 흐릿하여 마치도 물 밑에 있던 물귀신들이 앞 다투어 튀어나와 사람을 놀라게 할 것만 같고, 양 옆에서는 교룡과 이무기가 확 붙들어 낚아채려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곳이 옛 싸움터인지라 황하가 이렇듯이 운다고 말하기도 하나,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일야구도하기]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실려 있는 글이다. 박지원의 글은 오늘날 읽어도 여전히 펄펄 살아 있다. 매섭게 몰아지는 강물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실감나게 묘사한 문장은 200년도 더 된 옛 글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박지원의 글은 발표될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글에 담긴 생각의 진취성과 발상의 참신함에 많은 젊은 선비들이 박지원을 따랐다. 그러나 박지원식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는 주자학의 사유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당시 보수파의 비난을 받았고, 정조는 ‘문체반정(文體反正)’으로 그의 글을 탄압했다. 문체를 바르게 되돌려 놓음으로써 자식인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글쓰기 자체를 교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는 성리학에 어긋나는 이단적 사유를 색출한다는 왕권에 의한 사상 통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의 중심에 바로 박지원이 있었다.

 그럼 시대를 앞서나간 지식인, 박지원의 글쓰기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였다. 박지원은 아들 종채가 글쓰기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 이런 말만 했다고 한다. “매일 경서 한 장과 주자가 쓴 [강목] 한 단씩 읽거라.” 아들은 글쓰기를 가르쳐 달라는데 아버지는 글 읽기만 강조했다. 이는 글쓰기의 시작이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박지원은 독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군자가 일생을 마치도록 하루도 그만두어서는 안 될 일은 독서하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선비는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모습이 바르지 않게 되며, 그 언어가 바르지 않으면 갈피를 잡지 못해 몸을 의지할 것이 없게 되고 두려워 마음 붙일 곳이 없게 된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술을 마시는 일 따위를 애초부터 어찌 즐기게 될 것인가?

 자제들이 오만 방탕하고 빈둥거리거나 제멋대로 못하는 짓이 없다 하더라도 그 곁에 독서하는 사람이 있게 되면 절로 멋쩍어서 책을 읽을 것이다. 총명 준수한 자제라 하더라도 독서하는 소리를 아름답지 않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며, 부인네나 뙤약볕의 농부들이라 하더라도 그 자제의 책 읽는 소리를 기쁘게 듣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군자의 아름다운 말도 경우에 따라서는 후회함을 면치 못할 수 있으며, 선행도 혹 허물 있음을 면치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독서하는데 이르러서야 평생을 하여도 후회가 없고, 모든 사람이 따라서 하여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명분과 법이 아무리 좋더라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고, 육고기가 비록 맛있더라도 많이 먹으면 폐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될수록 폐단이 없는 것은 오직 독서일 것이다. 어린아이가 독서하면 요절하지 않고 노인이 독서하면 늙어 혼몽해지지 않는다. 귀한 사람은 그 귀함을 유지할 수 있고, 천한 사람은 분수에 넘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어진 사람은 지나치게 넘치지 않게 되고, 못난 사람도 유익함이 없지 않게 된다. 나는 집안이 가난해서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부자이면서 독서를 좋아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하였다.

 많을수록 더욱 유직하고 오래될수록 폐단이 없는 것은 오직 독서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독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박지원은 계획을 세우고 꾸준하게 독서할 것을 이야기하며, 특히 책을 소중히 다룰 것을 이야기 하였다.

 독서하는 방법으로는 일과를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제일 좋고, 오늘 읽을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고 하지도 말라. 순서와 횟수를 한정해 놓고 날마다 하여야 한다. 가리키는 대의를 정밀하고 분명하게 하며 음성은 무르녹게, 뜻은 익숙하게 한다며 절로 암송할게 될 것인데, 그런 다음에 차례대로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책을 마주해서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라. 책을 마주해서는 침을 뱉지 말 것이며, 기침이 나오면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표시를 할 때 손톱으로 하지 말라. 책을 베거나 그릇을 덮지 말며, 책을 난잡하게 늘어놓거나 책으로 먼지를 털지 말 것이다. 책에 좀이 슬면 볕이 들 때 즉시 볕에 쪼여라. 남의 서절을 빌렸는데 글자가 틀렸으면 고거(考據)하여 교정하고, ‘찌지(표하거나 적어 붙이는 종이 쪽지)’가 찢어졌으면 기워주고 책을 묶는 끈이 끊어졌으면 묶어서 되돌려 주라.

 하지만 이렇게 독서를 하였더라도, 학문이 정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박지원은 순수한 학문적 의지로 독서에 열중할 때야만 바른 선비라고 규정하면서, 평생 독서해도 진보가 없는 사람은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 슬픈 일이다. 누군들 선비가 아닐까만 능히 바른 일을 하는 선비는 드물며, 누가 독서를 하지 않으랴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선비는 드물도다.

 소위 독서를 잘한다는 것은 읽는 소리를 잘 내는 것을 말함이 아니며, 구두점을 잘 찍는 것을 말함도 아니고, 그 의미를 잘 이해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면, 그 내용을 잘 말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효제충신한 사람이 있더라도 독서가 아니면 모두 사사로운 지혜로 천착하는 것이며 권모지략과 경륜의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독서가 아니면 모두 권모술수로 맞추는 것이다. 이런 선비란 내가 말하는 바른 선비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바른 선비란 그 뜻은 갓난아이와 같으며 그 모습은 처녀와 같아서 평생 문을 닫아걸고 독서하는 선비이다.

 갓난아이는 비록 연약하지만 그리워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며, 처녀는 비록 서투르고 꾸밈이 없지만 자신을 지킴은 확고하다. 그처럼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 부끄럽지 않음은 오직 문을 닫아걸고 독서하는 선비일 것인 저.

 무릇 독서하는 사람은 독서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글 짓는 기술을 풍부하게 함인가. 글 잘한다는 명예를 높이기 위함인가? …… 독서를 하면서 목적을 구하는 것은 모두 제 욕심을 채우려는 사심이다. 평생 독서하되 진보가 없는 사람은 제 욕심 채우려는 사심이 방해한 때문이다.

 박지원은 위 글의 마지막을 ‘천하의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천하는 아무 일도 없는 태평세상일 것이다.’ 라고 맺고 있다. 북학파의 영수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당시의 양반 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 사회를 예견하였던 박지원, 그가 원했던 세상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고등학생을 위한 역사도서 길라잡이

-역사와의 만남과 소통

교육인적자원부

광주광역시교육청

2008.1.22 (주)성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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