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은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이다. 다산의 글들을 모아 전집 형태로 간행된 [여유당전서]를 살펴보면 154권 76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그 내용을 간단히 훑어봐도 문학은 물론, 경학, 예학, 지리학, 언어학, 의학,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거의 모든 인문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글들은 모두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것이다. 이러한 정약용의 천재성은 18세기 문예부흥기라는 시대적 산물이겠지만, 또한 쉼 없이 글을 읽었던 개인 노력의 결과였다.
 정약용은 성공적인 독서를 위하여 먼저 계획을 잘 세울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유배지에 있던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글이다.

 새해로구나.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그 마음과 행실을 또한 한 번쯤 해롭게 해야만 한다. 나는 젊었을 때 매 번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미리 일 년의 공부 목표를 정하곤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글을 초록할 것인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뒤에 이에 따라 실천했다. 간혹 몇 달 뒤에 비록 사고로 시간을 뺏김을 면치 못하게 되더라도 선을 즐거워하고 앞으로 향해가려는 뜻만큼은 또한 절로 덮어 가릴 수가 없었다. 내가 전후로 너희들에게 공부할 것을 권하며 몇 차례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도 일찍이 경전에 대해 의심나는 대목이나 예악에 대한 질문, 사책(史冊)에 대한 의논  한 조목조차 보여주는 법이 없구나. 너희들이 내 말을 심드렁하게 듣는 것이 어찌 이다지도 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이냐?

독서도 공부도 계획이 있어야 한다. 한 해 공부의 전체 방향을 미리 정하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그저 닥치는 대로 읽고 무작정 읽어서는 안 되며, 분량을 정해 규칙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또한 독서가 단순히 읽는 행위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스승에게 묻고 생각이 떠오르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한 둘 쌓여 학문에 대한 눈이 뜨여지게 되는 것이다.
 독서의 계획을 세웠다면, 이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사실 이 문제는 새로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막막하면서도 절실한 문제다. 정약용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 가르침을 주고 있다.

 촉(蜀) 땅의 아이가 고운 구슬 수천 개를 얻었다. 보고 기뻐서 품에 넣고, 옷자락에 담고, 입을 물고, 두 손에 움켜쥐기도 하며, 동쪽으로 낙양에 가서 팔려고 했다. 막상 길을 떠난 후, 지쳐서 앞섶을 해치면 품었던 구슬이 떨어지고, 물을 건너다 몸을 숙이면 옷자락에 담았던 것이 흩어졌다. 기쁜 일을 보고 웃거나 말할 일이 있어 입을 열면 머금고 있던 구슬이 튀어 나왔다. 벌이나 전갈, 살무사나 도마뱀처럼 사람을 해치는 물건과 갑작스레 맞닥뜨리면, 그 근심에서 자기를 지키려고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놓치고 말았다. 마침내 절반도 못 가서 구슬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실망해서 돌아와 늙은 장사꾼에게 이 일을 말해 주었다. 장사꾼이 말했다. “아아, 아깝구나! 왜 진작 오지 않았니? 고운 구슬을 나르는 데는 방법이 따로 있단다. 먼저 좋은 명주실로 실을 만들고, 빳빳한 돼지털로 바늘을 만든다. 푸른 구슬은 꿰어 푸른 꿰미를 만들고, 붉은 것은 꿰어 붉은 꿰미를 만들지. 감색과 검은색, 자주빛과 누런빛은 색깔 따라 꿰어, 남방의 물소 가죽으로 만든 상자에 담는다. 이것이 고운 구슬을 나르는 방법이다. 이제 네가 비록 만 섬이나 되는 구슬을 얻었다 해도 꿰미로 이를 꿰지 않는다면 어딜 가도 잃어버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게다.”
 오늘날 학문하는 방법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무릇 온갖 경전과 제자백가의 책에 나오는 사물의 이름이나 많은 목록들은 모두 고운 구슬이라고 할 수가 있다. 꿰미로 이를 꿰지 않는다면 또한 얻는 족족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 속담이 있다.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꿰지 않으면 흩어져 없어지고 만다. 오늘 이 책을 읽고 내일 저 책을 읽더라도, 저마다 따로 놀아 하나의 체계로 꿰어지지 않으면 책에서 얻은 지식은 잠시의 기쁨만 남기고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면 책에서 얻은 지식은 어떻게 꿰어야 할까?
 먼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몇 개 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에서 정평 있는 내 수준에 알맞은 책을 몇 권 골라 단계적으로 읽어 나간다. 어떤 책을 읽으면 그 책과 관련하여 다시 다른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소개한 또 다른 책을 읽는 방식의 독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처음에 막연하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고, 각 지식들 사이의 갈래와 체계를 잡아주게 된다.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편을 더 읽어보자.

 내가 최근 몇 년 이래 독서에 대해 자못 깨달은 점이 있다. 한갓 읽기만 해서는 비록 날마다 백 번 천 번을 읽는다 해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무릇 독서란 매번 한 글자를 읽을 때마다 뜻이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게 되면 널리 살펴보고 자세히 궁구하여 그 근원 되는 뿌리를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차례대로 글을 이룰 수가 있게 된다. 날마다 언제나 이렇게 한다면 한 종류의 책을 읽더라도 곁으로 백 종류의 책을 아울러 살피게 될 뿐 아니라 그 책의 내용도 훤하게 꿰뚫을 수 있게 될 터이니, 이 점을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는다고 하자. ‘조제(祖祭)를 지낸 뒤 길에 올랐다.’ 라는 한 구절을 마주하게 되면, “조(祖)란 것은 무슨 말입니까?”하고 묻지 않겠니?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니라’라고 말씀하실 게다. “꼭 조(祖)라고 말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라고 다시 물으면,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런 뒤에 돌아와 집에 이르면 사전을 꺼내서 조(祖)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아라. 또 사전을 바탕으로 다른 책에 미쳐서 그 풀이와 해석을 살펴 말의 뿌리를 캐고, 그 지엽적인 의미까지 모아야 한다. 여기에다 [통전(通典)]이나 [통지(通志)],[통고(通考)]같은 책에서 조제(祖祭)의 예법을 살펴 차례대로 모아 책을 만들면 길이 남을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전에는 한 가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에 대해 완전히 능통한 사람이 되겠지. 비록 큰 학자라 하더라도 조제 한 가지 일에 관해서는 너와 다투지 못하게 될 테니 어찌 큰 즐거움이 아니겠느냐?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완전히 알 때까지 끝까지 파헤치라는 이야기이다. 조제(祖祭)는 고대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비는 제사다. 그런데 왜 할아버지 조(祖)를 쓸까? 자전을 찾아보면, ‘길 제사 지낼 조’란 뜻이 나오고, 풀이를 찾아보면 “고대에 먼 길을 떠날 때 행로신(行路神)에게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일” 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왜 할아버지 조를 쓰는지 여전히 궁금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먼 옛날 황제(皇帝)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다는 기록을 찾게 된다. 조(祖)란 바로 이 누조의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생긴 제사임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조제는 어떤 방식으로 지낼까? 이것은 역대 여러 종류의 제사 지내는 방법을 적은 책을 참고하여 알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책들을 참고해보니 그 제사 지내는 형식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이런 공부의 과정을 목차를 세워 작은 책자로 정리하면 아주 훌륭한 자료가 되며 조제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차곡차곡 내공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학문에 대한 눈이 자연스럽게 뜨여지게 되는 것이다.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던 대학자였으나 중앙 정계에 있었던 시기보다 유배에 처해있던 시기가 더 길었다. 정약용의 강진 유배기가 관료로서는 암흑기였지만, 학자로서는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강학과 연구, 저술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알찬 수확기였다. 그리하여 정약용은 다독으로 다져진 박학함과 의문에 의문을 더하는 부단한 탐구 정신,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하여 결국 실학사상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을 위한 역사도서 길라잡이

-역사와의 만남과 소통

교육인적자원부

광주광역시교육청

2008.1.22 (주)성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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