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여름호에 ‘어찰의 정치학’ 논고 실어
한겨레 노형석 기자
지난 2월 조선 22대 임금 정조(재위 1776~1800)가 정적인 노론 벽파 수장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비밀편지(어찰)가 공개되면서 불거진 정조 독살설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어찰의 입수, 해독, 공개 작업을 주도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최근 계간 <역사비평> 87호(여름호)에 ‘어찰의 정치학: 정조와 심환지’란 논고를 싣고 어찰 등에서 발굴한 새 사료들을 근거로 독살설을 전면 부정하는 견해를 발표했다.

안 교수는 이 논고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이 제기한 노론 벽파 독살설은 정황과 추정만 제시한 허구에 불과하다”며 “정조는 명백히 병사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독살설 의혹에 대해 기존 학계에서 본격적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 글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교수의 논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벽파 독살모의설의 유력한 근거로 인용된 ‘오회연교’(五晦筵敎)에 대한 해석이다. 오회연교란 정조 서거 20여일 전인 1800년 5월30일 신하들에게 내린 정국 구상과 관련한 일종의 담화다. 이 소장 등 재야 학계에서는 정조가 오회연교에서 벽파를 내치고 남인들을 대거 등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벽파가 위기감을 느껴 독살 음모를 꾸몄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안 교수는 <정조실록> 전문과 정조가 어찰에 털어놓은 소회 등을 살펴보면 이 소장이 그 내용을 정반대로 오독, 왜곡한 것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오회연교는 조정 인사의 대원칙을 천명하면서 친벽파인 이만수를 병조판서에 임명하고 벽파의 핵심 이서구도 중용하겠다는 게 핵심으로, 오히려 벽파를 등용하려는 의향을 강하게 표명했다는 견해다. 실제로 정조는 오회연교를 발표한 5월30일 심환지에게 보낸 미공개 어찰(경기도 박물관 소장)에서 “오회연교의 핵심이 풍속을 바로잡는 ‘교속’(矯俗)에 있는데, 이 속(俗)이 실제로 시파를 지목하기 때문에 시파들이 반발한다”고 쓰고 있다. 6월9일치 어찰에서도 정조는 “내가 과거처럼 모서리 숨기고 까칠한 비늘을 감춰서 조는 듯 자는 듯한 (신중한) 태도를 (신하들에게) 보였는데, (오회연교에서) 전혀 다른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다”며 만족스러워하는 대목도 나온다. 안 교수는 “정조가 심환지에게 이렇게 속내를 드러낸 건 오회연교에서 화살을 돌린 대상이 벽파가 아닌 다른 쪽이었다는 명확한 증거”라고 풀이했다.

안 교수는 이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그의 수기인 <한중록>에서 자기의 친정을 적대시한 벽파의 심환지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냈는데도, <한중록>에서 독살 가능성을 전혀 제기하지 않은 것은 정조의 병사를 입증하는 분명한 증거라고 단정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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