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1(선조 14)∼?.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함(子涵), 호는 허주(虛舟)이며 조선 중기의 대표적 왕족화가 이경윤(李慶胤)의 서자(庶子)이다. 조선 중기의 화가로 벼슬은 주부(主簿)를 지냈다.
1609년 원접사의 수행 화원으로 의주에 다녀왔으며, 1623년에는 여항문인 유희경(劉希慶)의 요청에 의해 그의 별서인 〈임장도(林莊圖)〉를 그렸고 1628년 태조 어진(太祖御眞)을 개수한 공으로 동반(東班) 6품직을 제수받았다. 만년에는 1645년 소현세자를 따라 왔다가 3년간 머물고 돌아간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永光)과 가깝게 지내기도 하였다.
허균(許筠)은 그를 가리켜 ‘아버지와 삼촌을 배우고 따라서 화가가 되었고, 산수 · 인물 · 영모 · 초충에 모두 능하여 이정(李楨) 사망 후 본국제일수(本國第一手)’라고 하는 등 당시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았다. 그러나 남태응(南泰膺)은 ‘각체(各體)를 모두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대가였으나 고법(古法)을 넓게 구사하되 웅혼한 맛이 없고 정밀하나 오묘하지 못하여 기교에 능하되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평한 바 있다.
산수화에서는 조선 초기의 화풍에 더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수묵산수화와 함께 장식적인 취향이 짙은 이금산수화(泥金山水畵)도 잘 그려 이 방면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영모화(翎毛怜)에서는 절파풍(浙派風)이 강조된 묵법을 토대로 간일하게 도안화되었으면서도 서정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와 말, 기러기, 원앙새 등을 많이 그리고 이 분야의 한국적 화풍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표작으로 〈연사모종도(煙寺暮鍾圖)〉 · 〈이금산수도(泥金山水圖)〉 · 〈노안도(蘆雁圖)〉 등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惺所覆厄 槿域書畵徵, 韓國浙派畵風의 硏究(安輝濬, 美術資料 20, 1977)
【관련항목】 이명욱 (李明郁) 이함(李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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