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일제고사

from 좋은글모음 2008. 6. 30. 17:02

 한국의 아이들은 나란히 줄을 맞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성적을 올린다. 그들은 오직 공부만 먹고 성적만 낳는다. 그들에겐 오직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잘 계산된 지식이 모이로 주어진다. 그들 중의 얼마에겐 우주비행사에게 주어지는 고농축 식사처럼 족집게 과외란 이름의 특수한 모이가 주어진다. 그들에게 공부를 벗어난 꿈은 없다. 그들에게 성적을 뛰어넘는 희망은 없다. 그들에게 하늘은 일탈의 빌미일 뿐 함부로 바라볼 대상일 수 없다. 그들에게 땅은 책상을 받쳐주는 받침대일 뿐 그들을 위한 놀이터가 될 수는 없다.

 어른들은 그들로부터 성적 외에 다른 어떤 수확도 기대하지 않는다. 성적 외에 어떤 재주도 능력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쁨도 희망도 다 성적에 있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 사는 어느 불개미 떼는 그들의 생태상 어느 한 시기에 대이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개미떼들은 뜨거운 지열과 태양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몸들을 한데 뭉쳐 공처럼 둥글게 해서 공처럼 굴러서 이동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바깥으로 쳐진 개미는 뜨거운 태양열과 지열에 타 죽고 속으로 파 들어간 개미만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해나간다고 한다.

 지구촌에 있는 어느 한 나라에서는 청소년들이 그들의 피가 가장 뜨겁게 끓는 어느 시기에,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시기에 ‘살아남기(survival) 게임’을 벌인다. 서로의 몸들을 공처럼 둥글게 뭉쳐 공처럼 굴러가는데, 물론 이 게임에서 안으로 파고드는데 성공하는 아이는 살아남고 겉으로 쳐진 아이는 인생의 패배자로 낙인이 찍힌다. 아이들은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안으로 파고든다. 오직 안으로 파고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머리가 터지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도 안으로 파고 들면 살아남는 것이고 겉으로 쳐지는 것은 곧 패배가 아니면 죽음을 의미한다. 이 게임에서 손잡아 주고 얘기하며 더불어 갈 일은 없다. 마주 보고 웃을 시간도 없다. 같이 등 두드리며 갈 길은 없고 오직 외롭게 혼자 가는 길이다. 이 게임에서 한 번 낙오해버리면 다시는 재기하기가 힘들다. 속으로 파고 들어 살아남은 아이들은 또 그들끼리 모여 그들만 잘 살아가는 방안을 도모한다. 수십 년 동안 이 게임을 즐기는 어른들과 말리는 어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어쨌든 이 게임은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며 존속하고 있다.


………[중략]


 젖병도 덜 뗀 아이에게 영어를 쳐 박아 넣고, 놀이에 빠져 있어야 할 아이의 머리 속에 논리와 논술을 쑤셔 넣고, 미친년 널뛰듯이 세상에 출 수 있는 춤은 다 추어 가며 생 발광에 난리블루스를 떨더니 급기야는 그 동안 잠 안재우고 책상머리에 머리통 콱 붙들어 매고 쑤셔 넣어온 단어들, 공식들, 연대들 꺼 집어내어 제 아이들 일제히 줄 세워 놓고 키 재기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위정자, 교육자, 학부형이란 이름의 어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시험으로 성적으로 끊임없이 시험 들게 해놓고 정작 자신들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하여는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렸는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이 착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 지 제대로 읽으려 들지 않는다. 그저 돈 많이 벌어 제 아이들 학원비만 열심히 보태주는 게 그들이 살아가는 존재이유요, 전 생애의 둘도 없는 책무라 여기려 든다.


"바보들의 일제고사" 중에서

http://humor.hani.co.kr/board/h_humor/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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