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간 조선은 왜 섬을비우는무인도화 정책을 실시해야만했을까?

흔히들 왜적들의침입때문이라지만 핀트가맞지않는대답이다.

일본이안정되는16세기부터는 왜적도 사라지기때문이다.

 

진도라든지 완도,압해도,하의도 여수돌산도,금오도,지도등 코앞의섬들도

전부무인도다. 어찌이리기막힌일이있는가?

항해술이 문제였다. 배만드는것도 기술도 나무도 한번출항하기가 녹녹치않는일이었다.

인구천만의조선은 육지면적으로도충분하여 코앞이라도 섬을 통치하기난감한상황이었다.

 

유목민족인청나라는 년간 1만필의말을요구했다. 조공국가로서 아니 식민지국가로서

말을 갖다바치는건 생사가사활이걸린문제였다.

말키우는데 섬이동원된다.  제주도는 말생산의40%를 담당하였다.

진도는 800필 완도400필 섬마다활당량이정해졌다.

 

개간은일체금지되고 행정기관도 없이 관료만파견 말사육을 도와줄 소수의주민들만

살았다.  하지만 목초지가황페화되면 자연히 무인도가되버린다.

진도는 목장과무인도를 몇번이나반복하고있다.

 

물론 목장이없는 일부섬에도 사람이살았지만 이들은 부역을피해 요역을피해 달아난노비

들이 숨어들어와 민가를 형성한게대부분이며 언제 쇄환될지모르는 운명이었다.

 

머나먼 울릉도는말을키울수도없고 거리도너무멀어 러일전쟁이 일어날때까지 이곳은무인도였다.

1600년경 오타니,카와무라두가문은 무인도울릉도를 당연히그들 소유로삼고

몇세대를거쳐 살면서  어업에종사하면서 독점적이익을 창출하고있었다.

흔히들 안용복장군이 울릉도를 조선의영토로만들었다고하는데 일본측기록에는

그런내용이없고 오히려 일본령죽도(울릉도)에 들어왔다고 호통을치고 안정복은

용서를구하고있다.

또한 대마도주를통해 조선정부에항의 결국 울릉도는귀국의영토다라는 항복선언을

받아내었든것이다.

 

배를 타고 울릉도에간다는건 목숨을걸어야할만큼 먼항해길인데 지천에깔린게

무인도인데 안용복과 그일행 6명은 울릉도에간이유는뭘까?

정상적인사람이라면 결코 시도하지않을일을 배는어디서구했을까?

일본측기록에는 안용복이가타고온배에관한기록이

나온다. 형편없는나룻배를가지고 그먼바다를 항해하다니....

노비이거나 부역을피할려는 의도가아니면 섬으로갈이유가없다.나머지 사람도 중이라고 보기엔

의심스러운자라는기록이보인다.

섬으로달아난자는 쇄환당하면 곤장을맞고 유배를가기마련이다. 안정복역시유배를 간다.

그후기록이전혀없다. 일본측기록에는 안용복을 서울거주 인삼장수오충환의노비

부산좌천출신이라는 명패가남아있다.

만일 정부관료가 노비였다는걸 알았다면 그는 살아남기힘들었서리라.....

 

 

300년간 실효적으로 울릉도를 지배한 일본 울릉도와 아무관련이없는한국에게 울릉도를 달라고요구한다든지

문제를 삼지않는게 여간 다행한일이아니다.

그러므로 독도는 결코 양보할수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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