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라·은나라·주나라 이 삼대 이후로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워졌는가.

갈고리와 먹줄과 그림쇠와 굽은자를 써서 나무를 바로잡는 것은 나무의 본성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새끼와 끈과 아교와 옻칠로 단단히 만드는 것은 본래의 형태를 손상하는 것이다.
예의와 음악을 번거롭게 찾고, 인의로 달래어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들도 역시 그의 일정한 본연을 잃은 것이다.

천하에는 일정한 본연이 있다.
일정한 본연이란 것은 굽어 있어도 갈고리로 굽힌 것이 아니고, 곧아도 먹줄로 곧게 한 것이 아니고,
둥글어도 그림쇠로 둥굴게 한 것이 아니고, 모가 났어도 굽은자로 모나게 한 것이 아니다.
붙어 있으나 아교나 옻칠로 붙인 것이 아니고, 묶여 있으나 줄이나 새끼로 묶은 것이 아니다.

천하에 이끌리듯이 모두가 살고 있지만 살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다같이 모두가 자기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자기 모습을 지니게 된 까닭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아니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또 인의로 아교나 옻칠로 붙이고 줄과 새끼로 묶듯이 하여 도와 덕의 세계에 노닐려 하는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을 미혹시킬 뿐이다. 작게 미혹된 것이라면 방향이 틀린 것이다. 크게 미혹된 것이라면 본성을 잃은 것이다.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순임금이 인의를 내걸고서 천하의 인심을 어지럽힌 후로 세상사람들은 모두가 목숨을 걸고 인의의 편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인의로써 그들의 본성을 잃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은·주 삼대 이후부터 천하는 모두 물건 때문에 본성을 잃었다.
선비들은 명예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대부들은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켰다.
성인은 천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켰다. 이런 사람들의 행위는 내용도 다르고 그것에 의해 얻은 명성도 다르지만,
그들이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자기 본성을 손상시켰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인과 하녀가 함께 양을 치러 갔다가 둘이 모두 자기의 양을 잃어버렸다.
하인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책을 읽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녀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니 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한 일은 다르지만 자기가 지키던 양을 잃어버린 것은 같다.

백이는 수양산 아래에서 명예를 위해 굶어죽었다. 도척은 동릉 위에서 이익을 위해 죽었다.
두 사람이 죽은 상황은 다르지만 그들이 자기 삶을 해치고 자기 본성을 손상시킨 점에 있어서는 같다.
어째서 반드시 백이는 옳고 도척만 잘못되었다 할 수 있겠는가?

세상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다.
인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 사람들은 그를 군자라 부른다.
그가 재물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소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자기 몸을 희생한 것은 같은데 어떤 이는 군자가 되고 어떤 이는 소인이 된다.
삶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점으로 보면 도척이나 백이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 중 군자와 소인을 가려야 하는가?

-장자(외편) ; 제8편 변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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