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高祖, 유방)가 어느 날 한신에게, 장수들은 병사를 얼마나 이끌 수 있는지를 조용히 물었다. 황제가 말했다. “과인 같으면 얼마나 이끌 수 있겠소?” 한신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고작해야 십만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소?”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찌 나에게 붙잡혀 있소?” “폐하께서는 병사를 잘 이끌지는 못하지만 장수들은 잘 이끄십니다. 그래서 신이 폐하의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하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 高祖, 嘗從容問信將能將兵多少. 帝曰, 如我能將機下. 信曰, 陛下不過十萬. 帝曰, 於君何如. 曰, 臣多多益辦. 帝笑曰, 多多益辦, 何以爲我擒, 曰. 陛下不能將兵. 以善將將. 此信之所以爲陛下擒也. 且陛下天授非人力也.
-증선지,『십팔사략』

리더에게 걸맞는 인간적 자질이 따로 있다. 이를 동양고전에서는 ‘장장기將將器, 장수들의 장수가 되는 그릇’이라고 한다.

농민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방(劉邦, 기원전 256? 또는 기원전 247?~기원전 195. 생년에 두 가지 설이 있다)은 무학이었지만, 자신보다 훨씬 머리가 뛰어난 남자들을 수족처럼 다루며 천하를 거머쥐었다. 라이벌인 항우(項羽, 기원전 232~기원전 202)와는 대조적이다. 항우는 전쟁의 스페셜리스트였다. 그는 싸워 이길 때마다 부하들을 향해 “何如(하여)!”, 즉 “어떠냐!”고 자랑하듯 외쳤다. 한편, 유방은 큰 배포만이 쓸모가 있는 시골 깡패두목으로, 학문도 없고 전쟁에도 서툴렀다. 그는 싸울 때마다 고초를 겪고는 부하들을 향해“如何(여하)?”, 즉 “어떻게 하지?”하고 물었다.

“하여”의 항우와 “여하”의 유방. 결국, 당시의 유능한 스페셜리스트들은 항우가 아닌 유방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 자신이 전쟁의 스폐셜리스트로서 “어떠냐!” 하고 거만하게 외치는 항우의 밑에서보다는, “어떻게 하지?”를 연발하며 의견을 구하는 유방을 리더로 모시는 편이 자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점은, 유방은 결코 무능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점을 통해 부하의 재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재능”이라는 점에서 보면, 유방은 지극히 유능한 남자였다. “폐하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는 한신의 말 속에는 유방의 “무능한 까닭에 유능함”을 질투하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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