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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로 가슴이 아플 때,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할 때,  또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 홀로 갇혀 있는 것 같은 소외감에 시달릴 때 ... 그럴 때는 한(恨)이 가득 서린 음악을 통하여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 나는 주로 컨템프러리(Contemporary) 국악을 듣는다.

1987 년경 잠시 지방도시에 머물고 있던 어느날, 무료함을 달랠 겸 당시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한 고전음악 감상실에 들렸다가 긴 교향곡이 끝나고 난 다음 DJ가 교대하는 휴식시간에 흘러나오는 국악가요 한 곡을 듣고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바로, 김영동이 작곡하고 이현옥이 부른 "조각배"라는 노래였다.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배창호 감독/김보연, 안성기, 김희라 출연/1982)에서 김보연이 직접 부르기도 한 이 노래는 가사와 멜로디가 워낙 처절하여 처음 듣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가 않아서 주로 혼자 있을 때만 듣는데, 절절한 한(恨)을 녹여내는 것 같은 깊은 카타르시스와 함께 많은 위안을 받는다. 불행하게도 영화를 직접 보지 못해서 OST를 접해보지는 못했으나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김보연이 부르는 것을 보았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이선희가 리바이벌해서 부르는 것도 보았지만, 가지고 있는 1984년판 LP에 실려있는 이현옥의 노래 만큼 감동적이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이 탁월한 보컬리스트 이현옥이란 가수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여러 경로를 통하여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을 수가 없어서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모든 음반들이 김영동이란 사람만 내세우고 가수들은 모조리 뒷전이라 뭔가 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015B의 5집 음반(1994)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던 나미 원곡의 "슬픈 인연"을 부른 가수 김돈규가 당시에는 뒷전인 것 같았을 때의 그 못마땅하고 씁쓸했던 느낌과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김 영동/이현옥의 "조각배" 이후 컨템프러리 국악에 심취하여 김수철, 슬기둥, 어울림, 오정해, 김영임 등 여러 전통 및 현대 국악음악 그룹에 빠졌었는데, 그 중에서도 김수철이 작곡한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1987)"의 삽입곡 "한(恨)", 슬기둥의 "그리운 님"과 "봄비에게(1991)", 오정해가 부른 TV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2002)"의 삽입곡 "여인" 등을 즐겨 듣는다.

김수철에 대해서는 "대학가요제" 시절에 부른 "일곱 빛깔 무지개"류의 소란한 음악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그가 만든 현대국악 모음집(황천길, 1994)을 접하고 나서 그에 대한 인식을 달리한 것이 사실이다.   

특별히, 재색(才色)을 겸비한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국악인 오정해(1971-)는 영화 "서편제(1992)"에서의 그 비극적 배역에서부터 감동을 받아 이후 영화, 뮤지컬, 드라마 등의 출연과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의 교수(조교수) 활동 등 여러 방면에서의 활동을 관심있게 보고 있으며, 근래에 가장 자주 듣는 국악계통 음악 중에서도 오정해의 "여인"은 늘 맨 앞에 있다. 
 

조각배 (이현옥, 1984)
 

성난 물결 파도 위에

가냘픈 조각배

이내 설운 몸을 싣고

하염없이 가는 여인아


봄바람 꽃바람

속삭임도 역겨워

깊숙한 늪으로

덧없이 갈건가요

 
소낙비 쏟아지는

깊은 밤 갈대 숲

기약 없는 인생항로

정처 없이 가는 여인아

 
달님이 잠 깨어

방긋 웃음 역겨워

운명에 몸을 싣고

덧없이 갈 건가요
   

 

 

여인 (오정해, 2002)


어디인지 알 순 없지만

부르는 소리가 들려

누구길래 사무치게

내 이름 불러주나


가지마다 그림자 지고

거리엔 바람이 불어

창문 넘어 나무 사이로

누군가 기다려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를 부르며 애타는 모습

하얀 얼굴의 저 여인은 누구인가요

아 여인 아 여인


달이 뜨고 바람이 불면

희미한 그림자 지고

달 지더니 싸늘함에

가슴이 설레이네

 
알 수 없는 저 여인은

나를 찾으며 날 오라하네

긴 머리의 저 여인은 누구인가요

아 여인 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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