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척盜跖

from 좋은글모음 2010. 9. 11. 20:26

 공자 도척을 설득하러 가다

공자에게 유하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아우의 이름은 도척이었다. 도척은 9천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남의 집에 구멍을 뚫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남의 소와 말을 훔치고 남의 부녀자들을 약탈했다. 이익를 쫓느라 친척도 잊었으며, 부모형제도 돌아보지 않았고, 조상들의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큰 나라는 성을 지키고, 작은 나라는 성안으로 도망쳐 난을 피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했다.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했다.

“한 사람의 아버지라면 그 아들을 훈계할 수 있을 것이고, 한 사람의 형이라면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그 자식을 훈계할 수 없고, 형이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없다면, 부자와 형제간의 친애도 그리 대수로운 것이 못 될 것이다. 지금 자네는 세상이 알아주는 재능 있는 선비이면서도 아우가 큰 도적이 되어 천하에 해를 끼치고 있는데도 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자네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네. 내가 자네를 대신해서 그를 설득해 보겠네.”

유하계가 말했다.

“자네는 한 사람의 아비라면 반드시 그 자식을 훈계할 수 있고, 한 사람의 형이라면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만약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동생이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어찌하겠나? 또 도척이란 녀석의 사람됨은 마음은 치솟는 샘물같이 끝없고, 의지는 회오리바람같이 사나우며, 힘은 어떤 적이라도 막아내기에 충분하고, 그 말재주는 자기의 비행을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하다네, 제 마음에 들면 좋아하지만, 마음에 듣지 않으면 성을 내며 함부로 욕을 해대니, 부디 가지 말게.”

그러나 공자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안회에게 수레를 몰게 하고 자공을 오른편에 앉힌 뒤 도척을 만나러 갔다.

 

  공자가 도척보다 위선자이다

도척이 태산의 남쪽에서 졸개들을 쉬게 하고, 자신은 사람의 간을 회를 쳐 먹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앞으로 나가 도척의 졸개를 보고 말했다.

“노나라에 사는 공구라는 사람이 장군의 높은 의기를 듣고 두 번 절하고 뵙고자 합니다.”

졸개가 들어가 알리니, 도척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눈은 샛별같이 번뜩이고, 머리카락은 치솟아 관을 찌를 듯했다.

“그건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가 아니냐? 내 대신 그에게 전하라. 너는 적당히 말을 만들고 지어내어 함부로 문왕과 무왕을 칭송하며, 머리에는 나뭇가지 같이 이것저것 장식한 관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가죽으로 만든 띠를 하고 다니면서, 부질없는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먹고살며, 길쌈도 하지 않고도 옷을 입는다. 입술을 놀리고 혀를 차면서 멋대로 옳다 그름을 판단하여 천하의 군주들을 현혹시키고, 학자들이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함부로 효니 공손함이니 우애니 하는 것을 정해 놓고 제후들에게 요행히 인정을 받아 부귀를 누리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네 죄는 참으로 무겁다. 당장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네 간을 점심 반찬으로 삼을 것이다.”

공자가 다시 졸개를 통해 말했다.

“저는 장군의 형님인 유하계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디 장군의 신발이라도 쳐다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졸개가 다시 전하니 도척이 말했다.

“이리 데려오너라.”

 

  공자 도척을 설득하기 위해 말하다

공자는 총총걸음으로 나가 자리를 피해 물러서면서 도척에게 크게 두 번 절을 했다.

도척은 크게 노하여 그의 양발을 떡 벌리고,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눈을 부릅뜬 채, 마치 새끼를 거느린 호랑이처럼 말했다.

“구야, 앞으로 나오너라. 네가 하는 말이 내 뜻에 맞으면 살고, 거스르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키가 크고 체격이 늠름하며, 용모가 아름다워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고, 늙은이도 젊은이도 고귀한 이도 미천한 이도 모두 그를 좋아하는 것, 이것이 첫째가는 덕입니다. 그 지혜는 천지를 뒤덮고, 능력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있는 것, 이것이 중간의 덕입니다. 용기가 있어 과감하며 많은 부하를 거느리는 것, 이것이 제일 낮은 덕입니다. 누구나 이 가운데 한가지 덕만 갖추고 있으면 제후라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 덕을 함께 갖추고 계십니다. 키는 여덟 자 두 치나 되고,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나며, 입술은 진한 붉은 색이고, 이는 조개를 가지런히 한 듯하고, 목소리는 황종의 음에 들어맞습니다. 그런데도 도척이라 불리고 계시니 저는 장군님을 생각하여 이를 무척 부끄럽고 애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제 말을 따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남쪽으로는 오나라와 월나라,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노나라, 동쪽으로는 송나라와 위나라,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들에 장군을 위해 수 백 리 사방으로 큰 성을 만들어 수십만 호의 봉읍을 만들어 장군을 제후로 삼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천하와 더불어 이 난세를 혁파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며, 형제들을 거두어 보양해주고, 다같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인이나 재사들의 행위이고 또한 천하가 바라는 바입니다.”

 

  공자가 끼친 해가 도척보다 더 크다

도척은 더욱 크게 화가나서 말했다.

“이익으로 권할 수 있고 말로 간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세상의 어리석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지금 내 체격이 훌륭하며 용모가 아름답고 사람들이 나를 보면 좋아하는 것은 내 부모의 덕이다. 네가 칭찬해 주지 않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또 내가 듣기로. 남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등뒤에서 욕하기도 잘한다고 했다. 지금 네가 큰 성을 쌓게 한다느니, 백성들을 모아 준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익으로 나를 권면하는 것이니 나를 평범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다루려는 것이다. 허나 그런 것들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성이 크다 한들 천하보다 크겠느냐? 요와 순임금은 천하를 다스렸으나 그 자손들은 송곳하나 꽂을 땅도 갖지 못 했다. 탕임금과 무왕도 스스로 천자가 되었으나 그 자손은 모두 끊기고 말았다. 그것은 이익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또 내가 듣기에, 옛날에는 새나 짐승이 많고 사람의 수는 적어, 사람들은 모두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며 짐승의 해를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와 밤을 줍고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유소씨의 백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또 옛적에는 백성들이 옷을 입을 줄도 모르고 여름이면 장작을 쌓아놓았다 겨울에는 이것을 땠다. 그래서 이들은 지생의 백성이라고 한다.

신농씨 시대에는 안락하게 누워 자고 일어나서는 유유자적했다. 백성들은 자기의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는 몰랐고, 고라니나 사슴들과 함께 살았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 길쌈을 해서 옷을 입었으며 서로를 해치려는 마음 따위는 지니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극한 덕이 한창 성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황제는 덕을 완전히 실현시킬 수가 없어, 치우와 탁록의 들에서 싸워, 사람들의 피가 백리 사방을 물들였다. 이어 요와 순이 천자가 되자 많은 신하들을 내세웠고, 탕왕은 그의 주군을 내쳤으며, 무왕은 주왕을 죽였다. 이 뒤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게 된 것이다. 탕왕과 무왕 이후는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들이다. 지금 너는 문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이론을 도맡아 후세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나섰다. 넓고 큰 옷에 가는 띠를 띠고 헛된 말과 거짓 행동으로 천하의 임금들을 미혹시켜 부귀를 얻으려는 것이다. 도둑치고도 너보다 더 큰 도둑은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너를 도구(盜丘)라 부르지 않고, 반대로 나를 도척이라 부르는 것이냐!

 

  공자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너는 달콤한 말로 자로를 꾀어 따르게 하고, 그가 쓰고 있던 높은 관을 벗기고, 차고 있던 길 칼을 풀어놓게 한 뒤, 네 가르침을 받게 했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공구는 난폭한 행동을 금지시키고 그릇된 행동을 금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결국 자로는 위나라 임금을 죽이려다가 일을 이루지 못하고 위나라의 동문 밖에서 사형을 받아 그의 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되었다. 이것은 너의 가르침이 불충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스스로 재사니, 성인이니 자처하지만, 노나라에서 추방되었고, 제나라에서는 궁지에 몰렸었고, 진과 채나라 사이에서는 포위를 당했으니, 천하에 몸둘 곳이 없게 되지 않았느냐? 너는 자로로 하여금 처형을 당해 몸이 소금에 절여지게 만들었으니, 결국 환란으로 위로는 몸을 보전할 길이 없고, 아래로는 사람 노릇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너의 도를 어찌 귀한 것이라 하겠느냐?

세상에서 덕이 높다고 한다면, 황제보다 더한 이가 없지만, 그 황제도 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어 탁록의 들에서 싸워 백 리 사방을 피로 물들였다. 요임금은 자애심이 없었고, 순임금은 효를 다하지 못했으며, 우임금은 일을 하느라 말랐고, 탕왕은 그 주군을 내쳤으며, 무왕은 주왕을 죽였고, 문왕은 유리에 유폐되었다. 이 여섯 사람은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엄격하게 논하자면, 모두가 이익 때문에 그 진실에 대해 미혹됨으로써 억지로 그 성정을 거슬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수치스러운 것이다.

 

  현인이나 충신도 본성을 위배했던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현사로는 백이와 숙제가 있는데, 고죽의 임금자리를 사양하고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그들의 시체는 아무도 장사를 치뤄주지 않았다. 포초라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꾸미고 세상을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신도적은 임금에게 간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지고 스스로 황하에 몸을 던져 물고기와 자라의 밥이 되었다. 개자추는 충성을 다해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으나, 뒤에 문공이 그를 배반하자, 그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살다 나무를 껴안은 채 타 죽었다. 미생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었다. 이 네 사람은 잡기 위해 매달아 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나 표주박을 들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자나 다를 것이 없다. 모두가 자기의 명분에 얽매이어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근본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려 하지 않은 자들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충신으로는 비간이나 오자서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오자서는 처형을 당해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고, 비간은 가슴을 찢겨 심장이 드러내졌다. 이 두 사람은 천하에서 말하는 충신들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에서부터 자서나 비간까지 모두 귀하다고 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내게 귀신 얘기를 한다면 모르지만, 사람에 관한 일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도는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너에게 사람의 성정에 대해 얘기해 주겠다. 눈은 좋은 빛깔을 보려 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입은 좋은 맛을 보려 하고, 기분은 만족을 바란다. 사람의 수명은 기껏해야 백살, 중간 정도로는 80살, 밑으로 가면 60살이다. 그것도 병들고 여위고 죽고 문상하고 걱정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빼고 나면 입을 벌리고 웃을 수 있는 것은 한달 중에 불과 사오일 에 지나지 않는다.

하늘과 땅은 무궁하지만 사람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일정한 때가 있다. 이 유한 한 육체를 무궁한 천지 사이에 맡기고 있기란 준마가 좁은 문틈을 달려 지나가 버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기의 기분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 수명을 보양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가 도에 통달하지 못한 사람인 것이다.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내가 버리는 것들이다. 당장 뛰어 돌아가거라.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아라! 너의 도라는 것은 본성을 잃은 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사기와 허위일 뿐이다. 그런 것으로는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전할 수 없느니라. 어찌 논의할 대상이나 되겠느냐?

 

  공자 도척에게 기가 질리다

공자는 두 번 절하고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와 수레에 올라서는 말고삐를 세 번이나 잡았다 놓쳤다. 눈은 멍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얼굴은 잿빛이었다. 수레 앞턱의 가로나무에 기대어 머리를 떨구고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노나라의 동문에 이르러 유하계를 만났다. 유하계가 말했다.

“요즘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거마의 행색을 보니, 혹시 도척을 만나러 갔다가 오는 길이 아닌가?”

공자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렇다네.”

유하계가 말했다.

“도척이란 놈이 전에 내가 얘기한 대로이지 않던가?”

“그랬네. 아픈데도 없는데 뜸을 뜬 셈이 되고 말았네. 허둥대며 달려가다가 호랑이 머리를 매만지고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긴 셈이니 자칫하면 호랑이에게 먹힐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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