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아들처럼 장난스런 표정에 유난히 긴 두 귀가 눈에 띄는 경성제대의 수재 정태식, 코 밑에 수염을 기른 농부 차림으로 붙잡혀 고문으로 병을 얻어 죽게 되기까지 항상 자신있게 웃고 다니던 의리의 사나이 박영출, '솥땜장이'라는 별명대로 작고 왜소한 얼굴에 잔주름이 가득하니 쇠종을 흔들며 거리를 떠도는 땜장이 같은 이관술, 둥글넙적한 얼굴에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어쩌면 사진사 곁에 서 있을지 모르는 조선인 형사에게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쏘아보내고 있는 이순금, 변장의 명수라는 말대로 갸름하고 잘생긴 얼굴에 때로는 수염을 기르고 때로는 양복을 입고 찍은 이재유의 여러 장 사진들, 무섭게 찡그린 눈으로 사진사를 응시하는 이현상의 날카로운 인상, 갸름하니 긴 얼굴에 뜻 모를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귀부인 같은 이효정, 이순금처럼 조선인 형사를 노려보는 듯한, 둥근 얼굴에 작은 눈과 팔자 눈썹이 전형적인 조선의 처녀 박진홍, 두터운 입술에 사람 좋은 눈웃음을 띠고 있는 김삼룡의 촌머슴 같은 모습, 폭풍우에 직면한 듯한 매서운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이주하의 시원스레 잘생긴 얼굴, 냉정하고 이지적인 얼굴의 전형적인 지식인 박헌영......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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