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고기가 칼을 겁내랴[肉登俎 刀不怖]. 종자기가 죽으매, 백아가 석 자짜리 거문고를 끌어안고 장차 누구를 향해 연주하며 장차 누구더러 들으라 했겠는가? 부득불 찼던 칼을 뽑아 들고 단칼에 다섯 줄을 끊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 소리가 투두둑 하더니 급기야 자르고 끊고 집어던지고 부수고 깨뜨리고 짓밟아 죄다 아궁이에 쓸어 넣고 단번에 불살라 버린 후에야 겨우 성에 찼으리라. 스스로 자신에게 물었을 테지. 너는 통쾌하냐? 나는 통쾌하다. 너는 울고 싶으냐? 나는 울고 싶다. 소리는 천지를 가득 메워 마치 금석[金石]이 울리는 것 같고, 눈물은 솟아나 앞섶에 뚝뚝 떨어져 옥구슬이 구르는 것만 같았겠지. 눈물을 떨어뜨리다가 눈을 들어 보면 텅 빈 산에 아무도 없고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어 있다. 너는 백아를 보았느냐? 나는 보았노라."

뜨거운 눈물이 박지원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탁환, "방각본살인사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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