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해가 끝나면
다시 돌아드는 남루한 마음 앞에
조심된 손길이
지켜서 밝혀 놓은 램프
유리는 매끈하여 아랫배 볼룩한 볼륨
시원한 석유에 심지를 담그고
기쁜 듯 타오르는 하얀 불빛!
-쪼이고 있노라면
서렸던 어둠이
한 켜 한 켜 시름없는 듯 걷히어 간다

아내여 바지런히 밥그릇을 섬기는
그대 눈동자 속에서도 등불이 영롱하거니
키 작은 그대는 오늘도
생활의 어려움을 말하지 않았다

얼빠진 내가
길 잃고 먼 거리에 서서 저물 때
저무는 그 하늘에
호 호 그대는 입김을 모았는가
입김은 얼어서 뽀얗게 엉기던가
닦고 또 닦아서 티 없는 등피!

세월은 덧없이 간다 하지만
우리들의 보람은 덧없다 말라
굶주려 그대는 구걸하지 않았고
배불러 나는
지나가는 동포를 넘보지 않았다
램프의 마음은 맑아서 스스롭다
거리에
동짓달 바람은 바늘같이 쌀쌀하나
우리들의 밤은
조용히 호동그라니 타는 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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