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from 좋은글모음 2011. 7. 2. 10:16

열여덟살 때,공장이 너무 무서웠다. 일주일동안 곱배기 철야를 하고나면 미싱바늘이 지 손가락을 박는줄도 몰랐다.
눈을뜨고 지 손가락을 밟는 아이들도 무서웠고, 그런 아이들에게
잠안오는 약 타이밍을 파는 조장들도 너무 무서웠다.
생리를 공장에 와서 처음하는 열몇살 짜리 아이들은 생리혈을 다리에 벌겋게 흘리며,
왜 다리에서 코피가 나냐고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
열아홉살 때,시내버스 안내양을 하러갔다.
왼쪽 가슴에 노란 스마일 딱지가 붙은 파란 잠바를 줬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하사하신 것이라 했다.
그옷을 입고 하루 스무시간을 넘게 일했고 밤이면 그옷을 홀딱 벗긴채 알몸으로 검신을 당했다.
배차시간에 쫒겨, 미처 내리지도 못한 손님을 차에서 떨어뜨렸다고 김해경찰서에 두번이나 불러갔을때도 그옷을 입고 있었다.
거스름돈을 못받았다는 손님과 시비가 붙어 자갈치 한복판에서 피칠갑이 된채 두들겨 맞을때도 그옷을 입고 있었고,
짐값을 안주는 아지매에게 머리채를 잡혔을때도 그옷을 입고 있었다.
남들 꼬까옷입는 설날에도 나는 그옷을 입고 일을했고, 코피가 쏟아졌을 때도 그옷에 피가 묻은 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옷을 입고 나는 하루종일 반말을 들었고,새벽에 돌아가신 엄마의 부음을 일마치고 들어온,몸검신까지 다 끝난 자정이 넘어서야 들었다.
독재가 웃기는 게 뭐냐하면,
박정희가 죽었을때 내가 그 잠바를 끌어안고 울었다는 거다.
그 시절 만났던 광자언니는 서면에서 노점상을 하고,소식을 아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지금 비정규직이거나 식당일을 한다.
그 대통령의 죽음에 목놓아 울었던 나는 이렇게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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