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 술에 심취하는 사정을 고한다.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을 들어 찰찰 따르면 마음이 술병에 있고, 잔을 잡고서 넘칠까 조심하면 마음이 잔에 있고, 안주를 잡고서 목구멍에 넣으면 마음이 안주에 있고, 객에게 잔을 권하면서 나이를 고려하면 마음이 객에게 있다. 손을 들어 술병을 잡을 때부터 입술에 남은 술을 훔치는 데 이르기까지, 잠깐 사이라도 근심이 없게 된다. 몸을 근심하는 근심도, 처지를 근심하는 근심도, 닥친 상황을 근심하는 근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는 방도요,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내가 말했다.

먹은 누룩으로 빚은 술이 결코 아니고, 서책은 술통과 단지가 결코 아니거늘, 이 책이 어찌 나를 취하게 할 수 있으랴! 그 종이로 장독이나 덮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읽기를 사흘, 눈에서 꽃이 피어나고 입에서 향기가 머금어 나왔다. 위장 안의 비린 피를 깨끗이 쓸어 버리고 마음에 쌓인 먼지를 씻어 주어, 정신을 기쁘게 하고 온몸을 안온하게 해주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별천지로 빠져들었다. 아아! 이것이 바로 술지게미 언덕 위에 노니는 즐거움이니, 절묘한 시어에 깃들여 살아감이 마땅하도다!

아아! 내가 글을 쓴 것도 친구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이유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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