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옥잠[김성대]

from 바람의노래 2006. 2. 18. 23:19

물옥잠[김성대]

그녀들이 하얀 발을 내밀었고
나는 번갈아 핥아주었다
왼발의 여자에게선 복숭아향이 났고
오른발의 여자에게선 장마비 냄새가 났다
새빨간 매니큐어의 밤
발톱들이 무척이나 반짝거려 먼 별들도 비출 듯한데
그녀들은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서
물옥잠에 대해 말했다
주렁주렁 꽈리를 튼 혹과 꽃들의 전성기에 대해
부레가 부푸는 늪의 밤에 대해
그녀들의 말은 스펀지처럼 가볍고 구멍이 많았지만
귀기울여 듣다보면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철새가 날고 풀벌레가 울고 수초들이 자라
나의 방은 고요한 습지로 변해갔다
물옥잠의 자맥질에 밤은 깊어가고
그녀들의 발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나는 달빛을 번갈아 핥으며
새벽이 벗겨질 때까지 그녀들의 상상 속에 머물렀다



종종 마주쳤던 황망한 골목들이 생각난다.
그녀들은 물옥잠처럼 우리의 영혼을 세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귀 기울여 둗다보면 피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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