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은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그분과 우정을 맺은 사람은 나라 안에 두루 퍼져 있습니다. 위로는 정승 판서와 목사 관찰사가 그분의 벗이고, 다음으로 현인顯人 명사名士 또한 그분을 인정하고 추켜세웠습니다. 그 밖에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 그리고 혼인의 의를 맺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게다가 말을 달리고 활을 쏘며, 검劍을 쓰고 주먹을 뽐내는 부류와 서화書畵, 인장印章, 바둑, 금슬琴瑟, 의술, 지리地理, 방기方技의 무리로부터 시정의 교두군, 농부, 어부, 푸줏간 주인, 장사치 같은 천인에 이르기까지 길거리에서 만나서 누구하고나 날마다 도타운 정을 나눕니다. 또 줄을 이어 문을 디밀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하여 영숙은 누구냐에 따라 낯빛을 바꾸어 대우하여 그들의 환심을 얻었습니다.

또 각 지방의 산천과 풍속, 명물, 고적뿐만 아니라 수령의 치적과 백성의 숨은 불평, 군정軍政과 수리水利의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환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러한 장기를 가지고 사귀고 있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노닐고 있으니 마음껏 질탕하게 즐길, 뜻맞는 친구 하나쯤 어찌 없겠습니까 그런데 때때로 저의 문만을 두드립니다. 이유를 물으면 달리 갈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영숙은 저보다 나이가 일곱이 위입니다. 저와 더불어 같은 마을에 살던 때를 회상해보니 그때는 동자였던 제가 벌써 수염이 나있습니다. 10년을 헤아리는 사이에 낯빛의 성쇠가 이와 같은데도 우리 두 사람은 하루와 같이 생각되니 그 사귐이 어떠한 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영숙泳叔은 백동수白東修(1743-1816)의 자字

-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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