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보들레르]

from 바람의노래 2012. 4. 2. 22:23

내겐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 시의 원고과 연애편지, 소송 서류, 연가들.
영수증에 둘둘 말린 무거운 머리타래로
가득 찬 서랍 달린 장롱도
내 서글픈 두뇌만큼 비밀을 감추지 못하리.
그것은 피라미드, 거대한 지하 매장소.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시체를 간직하고 있는 곳.
―― 나는 달빛마저 싫어하는 공동묘지.
거기 줄을 이은 구더기들은 회한처럼 우글거리며,
내 소중한 시체를 향해 언제나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나는 또한 시든 장미꽃 가득한 오래된 규방.
거기 유행 지난 온갖 것들 널려 있고,
탄식하는 파스텔 그림들과 빛바랜 부셰의 그림들만
마개 빠진 향수병 냄새를 맡고 있다.

눈 많이 내리는 해들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우울한 무관심의 결과인 권태가
불멸의 크기로까지 번질 때,
절뚝이며 가는 날들에 비길 지루한 것이 세상에 있으랴.
―― 이제부터 너는, 오, 살아있는 물질이여!
안개 낀 사하라 복판에 졸며
막연한 공포에 싸인 화강암에 지나지 않으리.
무심한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지도에도 버림받아,
그 사나운 울분을 석양빛에서만
노래하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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