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으로 귀향 온 선녀
그녀는 대선배 굴원처럼 신화, 신선의 세계를 노래한 시인이다. 중국 시인 주지번은 난설헌의 시집에 머리말을 쓰면서 그녀를 ‘봉래섬’을 떠나 인간세계로 우연히 귀향 온 선녀라고 소개하고, 그녀가 남긴 시들은 모두 아름다운 구슬이 됐다고 했다. 천재로 태어난 조선의 여인, 현실에 좌절하고 고통 받은 눈물은 난설헌 시의 구슬이 되었고, 당대 중국 선비들은 난설헌의 시집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읽었다고 한다.
난설헌의 시에는 신선과 꿈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터져 나와 꽃봉오리로 피어난 것이다. 이 꽃봉오리에 신선이 노닌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울분의 마음이 지평을 넓힌 것이다.
어젯밤 꿈에 봉래산에 올라/ 갈파의 못에 잠긴 용의 등을 탔었네/ 신선들께선 푸른 구슬지팡이를 짚고서/ 부용봉에서 나를 정답게 맞아주셨네/ 발 아래로 아득히 동해물 굽어보니/ 술잔 속의 물처럼 조그맣게 보였어라/ 꽃 밑의 봉황새는 피리를 불고/ 달빛은 고요히 황금 물동이를 비추었어라.//
천상의 선녀는 잠시 지상에 내려와 쓴 시를 임종을 맞아 다 태워버렸지만, 여섯 살 아래 동생 허균은 천재적인 머리로 불우했던 천재 누나의 시를 외워 시집으로 엮어냈다. 동생 허균에 의해 편집돼 전해지는 시가 210편이다. 천재 허균은 보는 대로 외우는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어려서 누이에게 시를 배웠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 시집을 중국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