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홀로 됐고, 나도 혼자이고…. 뭐 둘 다 즐거운 일도 없고…. 어떠신가요. 있는 걸로 없는 것을 바꿔보심이….”(陛下獨立 孤분獨居 兩主不樂 無以自娛 願以所有 易其所無)
한나라의 ‘사실상’ 황제인 여태후(?~기원전 180)가 한 통의 외교서한을 받는다. 흉노의 묵돌 선우(鮮于·왕)가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서신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당신도, 나도 홀로 됐으니 함께 만나 즐겨보자”는 것이었다.
‘함께 즐겨보자’ 흉노왕의 연애편지 = 도저히 외교서한이라 볼 수 없는 사적인 연애편지였다. 아니 지금으로 치면 성적 모욕감을 한껏 준 스토커의 쪽지에 불과했다. 사실 여태후가 누구인가. 한나라를 세운 유방(고조)의 부인이다. 남편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여걸이었다.
기원전 195년에 남편이 죽자, 아들(효혜제·기원전 195~188)을 대신해 사실상의 황제 노릇을 했다. 오죽했으면 사마천이 역대 황제의 전기인 <사기> ‘본기’에 ‘여태후’를 올렸을까. 사마천은 여태후를 황제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사실 그런 대접을 받을 만 했다.
“모든 정치가 안방에서 이뤄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또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쓰니 의식이 나날이 풍족해졌다.”(<사기> ‘여태후 본기’)
그런 여태후에게 흉노의 선우(왕)인 묵돌이 연애편지나 다름없는 서한을 보낸 것이다. 여태후는 부들부들 떨었다.
‘묵돌이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여태후는 장수들을 총동원, 비상회의를 열었다. 상장군 번쾌가 나섰다.
“저에게 10만 병사만 주면 저 흉노를 가로·세로로 짓밟아 쓸어버리겠나이다.”
서슬퍼런 여태후의 기세에 편승한 발언이었다. 다른 장수들도 동의했다. 그러나 중랑장 계포가 나섰다.
“저, 번쾌의 목을 당장 쳐야 합니다. 고조(유방)께서도 군사 40만명을 동원하고도 ‘평성의 치(恥)’를 당했는데 어떻게 10만명으로 흉노의 한복판을 짓밟는다는 말입니까.”
계포의 직소(直訴)가 이어진다.
“진나라 시황제도 흉노 정벌을 일삼았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나 망했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번쾌가 아부를 떨어 천하를 흔들려 하고 있습니다.”
회의의 분위기는 계포의 한마디로 급반전된다. 여태후도 모욕감을 애써 감춘채 흉노정벌의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굴욕적인 답장까지 써서 묵돌의 기분을 맞췄다.
“제가 나이가 들어 기력도 없고, 걸음걸이도 시원치 않네요. 감히 선우님을 뵐 수 없어요. 대신 공물을 보낼게요.”
계포와 여태후의 판단은 어쩔 수 없었다. 당대 흉노는 진과 한나라를 능가하는 대국이었으니까…. 그렇게 능욕을 당해도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