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2년 한 겨울. 묵돌 선우가 파죽지세로 남하한다. 역시 천하통일로 기세가 오른 한 고조는 40만 병력을 동원, 친정에 나선다. 하지만 맹추위와 눈보라에 한나라군의 20~30%가 동상에 걸린다. 여기에 묵돌 선우의 계략이 빛났다.

묵돌은 정예부대를 숨겨놓고는 약졸들을 내세워 한나라군을 계속 유인했다. 묵돌의 전략에 속은 한나라군은 32만 보병으로 맹추격전을 벌인다. 한 고조는 전군의 선두에 섰다. 한나라군이 평성(산시성 다둥시 동북쪽)에 이르렀다.

그때서야 묵돌이 반격에 나섰다, 40만 정예기병을 동원, 고조가 이끄는 한나라군을 백등산 위로 몰아넣고 포위했다. 포위는 일주일간이나 계속됐다. 보급이 끊겨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 그 때 기사회생의 묘책이 나왔다. 묵돌의 연지(閼氏·왕비)에게 밀사를 파견한 것이다. 후한 선물과 함께…. 밀사가 속삭였다.

“한나라엔 미인들이 많아요. 만일 당신 남편(묵돌)이 한나라를 정복한다면 아마 한나라 여자들에게 흠뻑 빠질 겁니다. 그럼 당신은 폐비가 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위기감을 느낀 연지는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다.

“두 나라 임금이 서로 괴롭히면 안돼요. 그리고 한나라 땅을 차지해도 거기서 살 수는 없잖아요?”

마음이 약해진 묵돌은 포위망 일부를 풀었고, 한고조는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역사가 ‘평성의 치(恥)’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엄청난 치욕이 이어졌다. 한나라가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3가지 조항을 보면 굴욕 그 자체다.

“(1)한나라 공주를 선우의 연지로 보내고, (2)해마다 일정량의 무명과 비단, 술, 쌀 등을 바치며, (3)형제의 맹약을 맺는다.”

다만 자존심 때문에 차마 공주를 보낼 수는 없었다. 종실 여인을 공주라 하여 속여 보냈다.

천하의 한나라가 오랑캐인 흉노 왕에게 종실여인과 조공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형제의 연, 아니 사실상 동생이 되기를 약속한 것이다. 묵돌이 여태후에게 ‘우리 같이 살아볼까나’하는 어투의 연애편지를 보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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