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는 이후 누란과 오손, 호계 등 26개 인접국까지 모조리 병합하면서 더욱 기세를 떨쳤다. 묵돌의 뒤를 이은 노상계죽 선우(재위 기원전 174~160)때의 일이다. 한나라가 흉노에 보내는 국서는 1척1촌의 목간을 사용했다. 그런데 흉노는 1척2촌의 목간을 썼다. 도장과 봉투도 더 크게 했다. 목간에는 이렇게 썼다.

“나는 하늘이 세운 흉노 대선우(天所立匈奴大單于)다. 천지가 생겨난 곳, 해와 달이 머무는 곳의 흉노 대선우(天地所生日月所置匈奴大單于)가 삼가 한 황제에게 묻노니 안녕하신가?”

거만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흉노의 위상이 한나라보다 한 수위라고 한 것이다. 이같은 도발에도 한나라는 꿈쩍도 못했다. 언젠가는 한나라 사신이 흉노의 풍습을 비아냥댄 일이 있었다.

“흉노에서는 노인을 천대한다지요? 또 아비와 아들이 같은 천막에 살며,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계모를 아내로 하고, 형제가 죽으면 남은 형과 동생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한다지요? 조정에 예절도 없다지요?”

그러자 흉노의 충신 중항열(한나라 망명객)이 반박한다.

“흉노는 알다시피 전투를 큰 일로 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건장한 이들을 우대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라를 보전할 수 있으니까. 또 부자형제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

중항열이 더 쏘아붙인다.

“중국은 겉치레가 심하다. 충성이나 믿음없이 예의를 강요하기 때문에 위아래가 원한으로 맺어있기 일쑤다. 궁실의 아름다움만 좇기에 헛된 노력들을 쏟는다. 겉만 화려하고 실속도 없는데 예의는 무슨 말라 비틀어진 예의냐.”

중국 사신이 더 대꾸를 하려 하자 중항열은 쐐기를 박는다.

“사신은 듣거라. 너희 한나라는 해마다 보내기로 한 비단, 무명, 쌀, 술을 차질없이 보내주기만 해라.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만약 나쁜 물건을 보낸다면 각오해라. 곡식이 익는 가을을 기다렸다가 기마병으로 농작물을 확 짓밟아 놓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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