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김씨=흉노족?

from 좋은글모음 2012. 4. 18. 10:03

흉노족을 우리 민족과도 결부시키기도 한다.

지난 1954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궈자탄(郭家灘) 마을에서 흥미로운 비석하나가 나왔다. 864년 5월29일 향년 32살로 사망한 재당 신라인 ‘대당고김씨부인(大唐故金氏夫人)’의 묘지명이었다.

“먼 조상 김일제가 흉노의 조정에 몸담고 있다가 서한(西漢)에 투항하시어 (중략) 투정후라는 제후에 봉해졌다. 이런 김일제의 후손이 가문을 빛내다가 7대를 지나 한나라가 쇠망함을 보이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신라)에 숨어 살게 되었다.”

이것은 신라 김씨가 스스로의 뿌리를 ‘흉노’에서 찾고자 했음을 알리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의 단편이 신라 제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비문에도 남아있다. 1769년과 2009년에 발견된 이 비문 조각편의 내용을 더듬어 보자.

“문무왕의 선조는~ 투후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했다.”

여기에 나오는 ‘투후 제천지윤’은 <한서(漢書)> ‘열전’에 나오는 김일제를 뜻한다. 김일제(기원전 134~86)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였다. 한무제 때 한나라에 투항했다.(기원전 102) 한무제는 김일제를 ‘투후’에 봉한 뒤 김씨성을 하사했다. 그런데 문무왕릉비와 재당 김씨부인 묘비문을 비교해서 살펴보자. 문무왕릉비에 나오는 ‘투후’는 재당 김씨 부인묘의 ‘투정후’와 연결된다.

그렇다고 ‘김씨’를 흉노족의 후예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자료를 발굴한 권덕영 교수(부산외대)는 공개당시 “당나라에 살던 신라 김씨의 이같은 뿌리의식은 관념상일 뿐, 실제 흉노인 김일제로부터 비롯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한 바 있다.

다만 9세기대 김씨들이 스스로의 뿌리의식을 흉노에서 찾고자 했음은 알 수 있다. 최근 강인욱 교수(부경대) 주도로 ‘흉노와 그 동쪽의 이웃들’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흉노 고분 가운데 가장 대형이라는 골모드 유적의 발굴성과가 발표됐다. 또 북흉노의 국가구조가 부여와 고구려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또 흉노가 고구려와 옥저의 발명품인 온돌의 기술을 도입했음을 알렸다. 흉노계 기마문화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 지도 알아내려 했다. 몽골에서만 10여개국 조사단이 흉노유적을 발굴하고 있단다. 2000년 전 시대를 풍미한 뒤 홀연히 사라진 흉노제국은 참 매력적인 연구대상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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