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맹상군이 제나라 왕의 의심을 사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식객들은 하나둘 슬그머니 맹상군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식객들의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사로잡았다고 굳게 믿었던 맹상군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맹상군이 얼마나 실망했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다행히 풍환馮驩이란 식객이 남아 제나라 왕의 의심을 풀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여기서 잠깐, 풍환이 누구던가? 수천 명에 이르는 식객들 중에서도 전혀 눈에 띄지 않던 인물이었다. 자신을 몰라준다며 긴 칼을 붙들고 계속 투정 섞인 노래를 불렀던 풍환, 그런 풍환이 못마땅했지만 마지못해 좋은 밥과 수레를 내주었던 맹상군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비참한 상황에서 오로지 풍환만이 남아 맹상군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이런 것이 진정 인간관계의 실상인가? 아니면 인간관계의 오묘함인가?
아무튼 맹상군은 풍환의 기지에 힘입어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맹상군 곁을 떠났던 식객들이 다시 돌아오고 싶다며 은근히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맹상군은 탄식이 절로 나올 뿐이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정녕 이런 것이더란 말인가? 맹상군은 풍한을 붙들고 하소연했다. 『사기』의 이 대목은 아주 볼 만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잠깐 들어보자.
(맹상군)이 몸이 빈객을 좋아하여 손님을 대우하는 일에 실수가 없었으며, 때문에 식객이 3,000여 명에 이르렀던 것은 선생이 잘 아시는 바요. 그런데 내가 한 번 파면되자 빈객들은 나를 저버리고 모두 떠나버리고 돌보는 자 하나 없었다오. 이제 선생의 힘을 빌려 지위를 회복했는데, 빈객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볼 수 있단 말이오? 만약 나를 다시 보려는 자가 있다면 내 그 자의 낯짝에 침을 뱉어 욕보이고 말겠소이다.
풍환 역시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좀 더 들어보자.
(풍환)대체로 세상의 일과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과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맹상군)이 몸이 어리석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소.
(풍환)살아 있는 것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부귀할 때는 선비가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천하면 떠납니다. 이는 본래부터 일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군께서는 아침에 시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였습니까? 이른 아침에는 어깨를 부비며 서로 먼저 가겠다고 다투어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해가 저문 뒤에는 팔을 휘휘 저으며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아침에는 좋았는데 저녁에는 싫어서가 아닙니다. 기대하는 물건이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께서 벼슬을 잃었기 때문에 식객들이 다 떠난 것입니다. 이를 원망하여 빈객이 돌아오는 길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빈객들을 전처럼 대우하십시요.
맹상군은 풍환을 향해 정중하게 "삼가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