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령에 앞서 염약거란 사람이 있었다. 염약거는 "고문상서소증古文尙書疏證"이란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치밀한 문헌적 증거를 들어 "서경"에 실린 글의 반이 가짜라는 것을 논증했다. 그런데 옛날 주자 역시 "서경"의 절반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자 학설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모기령이 나서서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고문 상서의 억울한 하소연' 쯤으로 번역되는 "고문상서원사古文尙書寃詞"다. 이 책 역시 조선의 지식인들을 열광케 하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고문상서가 진짜냐 가짜냐 언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약용 역시 이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해남海南 유배지에서 쓴 책이 바로 "매씨서평"이다. 그 원고가 홍석주 집안에 전해졌다. 홍석주가 읽어보니 중요한 책이 빠졌다. 그래서 정약용에게 "고문상서소증"을 빌려준다. 훑어보니 "매씨서평"에서 그가 했던 작업은 이미 "고문상서소증"에 다 있는 것이 아닌가. 정약용은 절망했다. 하지만 어떤 장약용인가. 다시 "고문상서소증"을 이잡듯 검토하고 오류를 찾아내어 자신의 저작에 수렴하였다. 홍씨 집안은 정보에 빨랐던 것이고, 다산은 늦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홍씨 집안의 거대한 최신의 장서가 정약용 학문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가장 중립적으로 보이는 고증학은 어떤가. 고증학은 작은 언어의 파편들을 모아서 텍스트의 진위를 가려내었다. 그 결과 유가儒家들이 철석같이 믿는 "서경書經"의 절반이 가짜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렇다면, 그 가짜 "서경"을 성인의 말씀이라 인용하여 그동안 설하셨던 그 거룩한 말씀들은 모두 무엇이 되었겠는가. 중립적인 고증학은 부인할 수 없는 결론을 가져왔고, 그것은 결코 유가에 이롭지 않았다.

-강명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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