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과 방연, 지혜를 다투다 : 손방투지]
- 손방투지의 승리자, 손빈
손방투지(孫龐鬪智)라는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제목에서 소개한 것처럼 ‘손빈과 방연이 지혜를 다투다’라는 뜻으로, 서로 대등한 사람들이 경쟁할 때 이와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결코 대등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손빈이 방연보다는 월등히 우세했지요. 결국 마릉 전투에서 방연은 손빈의 지략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손빈과 방연은 누구일까요?
아쉽게도 두 사람의 자세한 인물 정보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손빈이라는 사람은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사람이며, 손자(손무)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손자의《손자병법》과 견줄만한《손빈병법》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서 전해졌습니다.
방연과 손빈은 귀곡이라는 뛰어난 학자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선후배사이였습니다. 성격이 급한 방연이 먼저 위나라 혜왕의 장군으로 출세하였고, 어린시절의 약속대로 손빈을 위나라로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방연은 자신보다 뛰어난 손빈의 재능을 질투하여, 혜왕에게 손빈이 제나라와 은밀히 내통한다고 모함했습니다. 결국 손빈은 두 다리가 잘리고, 이마에 먹물로 죄목을 새기는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제나라의 사신이 위나라에 와서 감금 상태에 있던 그를 몰래 제나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제나라의 장군 전기는 손빈을 매우 존중하여 제나라의 위왕에게 추천하였고, 마침내 손빈은 제나라의 군사로 임명받았습니다.
▦ 계릉전투
위나라의 장군 방연은 조나라를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조나라가 제나라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나라는 조나라를 결정하고, 군대를 군사인 손빈이 이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방연과 손빈의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조나라를 돕고자 했던 제나라는 당연히 군사를 조나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손빈이 이것을 반대했습니다. 조나라를 돕는다는 대의명분을 이용하여 제나라의 이득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손빈은 하나의 전략을 내세웁니다.
“위나라는 조나라를 치기 위해 많은 군사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위나라에는 늙은 병사만 조금 남아있겠지요. 이럴 때 우리가 위나라를 치면 힘들이지 않고 위나라의 여러 성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듣고 조나라에 있는 위나라 군사 또한 철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후세에 군사학에서는 위위구조(圍魏救趙: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위나라를 친다)라고 하여 ‘남을 도와주면서 나의 이득을 취한다’는 대표적인 군사전략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같은 전략과 뛰어난 손빈의 전술로 마침내 제나라의 군대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마릉전투
그 후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계릉전투 이후 위나라는 주변 국가들로부터 끝없는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고심 끝에 위나라는 한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연이 이끄는 위나라의 군대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다급해진 한나라는 제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제나라의 군신들은 회의 끝에 한나라를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손빈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손빈은 한나라가 위나라의 공격으로 거의 쓰러져갈 무렵에 기회를 봐서 위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위나라의 군사들은 계릉전투 때처럼 회군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져 있기 때문에 손쉬운 전쟁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손빈의 계책대로 얼마간 기다리다가 제나라 군대는 위나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놀란 위나라 혜왕이 방연을 불러들여 제나라 군대를 막게 했습니다. 손빈은 위나라의 군대를 보고 겁에 질려 후퇴하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이리저리 위나라의 군대를 피해 다니면서 말이죠. 그리고 손빈은 야영지의 화덕을 점점 줄이게 했습니다. 그러자 손빈의 군대를 뒤쫓던 방연이 쾌재를 불렀습니다.
“제 아무리 귀신같은 손빈 놈이라도 겁먹고 도망가는 군사들의 탈영을 막을 수 없나보군.”
그래서 방연은 군사들을 재촉하여 손빈의 군대의 뒤를 쫓았습니다. 방연은 지난 계릉전투 때 당했던 모욕을 빨리 갚아주고 싶은 나머지 군사들이 지치는 것도 무시했습니다. 그런 방연의 마음을 훤히 알고 있던 손빈은 자기가 원하던 때에 방연의 군대를 마릉이라는 고장의 산 속에 유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릉은 길이 좁고 험해서 매복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지요.
한밤중에 마릉에 도착한 방연은 어떤 큰 나무가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 있고, 거기 무언가 글씨가 써져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방연은 횃불을 밝히고 그 글씨를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龐涓死此樹下 (방연사차수하, 방연이 이 나무아래서 죽다.)
방연이 그 글씨를 확인한 직후, 사방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고, 그의 군사들마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을 두고 후세 사람들은 감조유적(減灶誘敵, 솥을 줄여 적을 속이다.)이라고 일컫습니다. 이것은 기세등등한 적의 힘을 역이용하여 승리한다는 의미로, 군사학의 중요한 전략이 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 [역사인물 기행]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빈 - 오마이뉴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uniorgy&logNo=700921284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