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易近人
[字解]
平(평평할 평)
易(쉬울 이)
近(가까울 근)
人(사람 인)
[意義]
사람의 태도가 謙遜하고 溫和하여 쉽게 接近할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出典]
史記 권33 魯周公世家.
[解義]
周公은 西周시대의 유명한 정치가로서 그의 이름은 姬旦이다. 그는 주나라 文王 姬昌의 아들이자, 武王 姬發의 동생이었다. 문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도, 그는 효성이 강하고 인자하여 다른 아들들과는 같지 않았다.《周公旦者,周武王弟也.自文王在時,旦爲子孝,篤仁,異於群子.及武王卽位,旦常輔翼武王,用事居多.》
주 무왕이 즉위하자, 희단은 그를 보좌하여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였으며, 상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魯公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주공은 封地로 가지 않고, 계속 무왕을 보좌하였다.
무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어린 아들 姬誦, 즉 成王이 즉위하였다. 주공은 성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다스렸다. 이를 두고 관숙과 그의 아우들은 주공이 성왕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유언비어를 나라 안에 퍼뜨렸다.
주공은 太公望과 召公奭에게 말했다.
"나는 천하의 백성들이 주나라를 등질까 두렵소. 삼왕께서 오랫동안 걱정하고 애쓰신 덕택에 천하가 이렇게 지탱되고 오늘에 이르렀소. 무왕은 일찍 숨을 거두고 성왕은 아직 어리니, 이런 때 장차 주나라를 일으키는 것이 내가 섭정을 하는 목적이오."
주공은 계속하여 성왕을 보좌하며, 자신의 아들 伯禽을 봉지인 魯 땅으로 보냈다. 주공은 아들을 보내면서 그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나는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동생이며, 성왕의 숙부이니, 나의 지위는 천하에서 낮지 않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목욕하는 데 머리카락을 세 번씩이나 털고 손님을 맞았으며, 한 번 식사하는 데 세 번씩이나 뱉고 일어나 선비를 접대하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걱정하였다. 너는 노나라에 가거든 나라를 가졌다고 남에게 교만해서는 안 되느니라."
《於是卒相成王,而使其子伯禽代就封於魯.周公戒伯禽曰,「我文王之子,武王之弟,成王之叔父,我於天下亦不賤矣.然我一沐三捉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之賢人.子之魯,憤無以國驕人」.》
太公은 齊나라 땅에 봉지를 받았는데, 5개월만에 그곳의 상황을 주공에게 보고하였다. 주공은 깜짝 놀라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보고가 왜 이리 빠른가? 제나라의 정치가 벌써 안정되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저는 君臣 간의 예절을 간소화하고, 그곳의 실정에 맞추어 시작하였으며, 그곳의 풍속에 따라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한편 노나라 땅에 封地를 받은 주공의 아들 백금은 魯公이 되었다. 그런데 백금은 노나라 땅에 도착한지 꽤 오래되었으나 그곳의 상황을 아버지 주공에게 보고하지 않다가, 3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간의 政事를 보고하였다.
주공은 몹시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
"저는 그곳에 도착하여 그곳의 풍속과 禮制를 고치고, 武王의 3년상을 치르다 보니 보고가 이렇게 늦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공은 바로 탄식하며 말했다.
"아! 장차 노나라가 제나라를 섬기게 되겠구나. 일반적으로 정치가 간편하지 않고 행하기에 쉽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가오지 않지만, 정치가 평이하고 백성들에게 친근하면 백성들이 반드시 돌아오게 되는 법이다[夫政不簡不易, 民不有近; 平易近民, 民必歸之]."
《周公卒.子伯禽固己前受封,是爲魯公,魯公伯禽之初,受封之魯.三年而後報政周公.周公曰,「何遲也?」.伯禽曰,「變其俗,革其禮,喪三年然後除之,故遲」.太公亦封於齊,五月而報政周公.周公曰,「何疾也?」.曰,「吾簡其君臣禮,從其俗爲也」.及後聞伯禽報政遲.乃歎曰,「嗚呼! 魯後世其北面事齊矣!夫政不簡不易,民不有近,平易近民,民必歸之.」》史記卷033魯周公世家
* 魯(노둔할 노.로) 姬(성 희) 旦(아침 단) 昌(창성할 창) 發(쏠 발) 誦(욀 송) 望(바랄 망) 召(부를 소) 奭(클 석) 禽(날짐승 금) 然(그러할 연) 沐(머리감을 목) 捉(잡을 착) 起(일어날 기) 待(기다릴 대) 猶(오히려 유) 恐(두려울 공) 君(임금 군) 臣(신하 신) 政(정사 정) 事(일 사) 禮(예도 예.례) 制(마를 제) 政(정사 정) 簡(대쪽 간) 歸(돌아갈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