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가고 없는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짧은 시를 하나 썼다. 그의 수많은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시이다. 


미군이 있으면 삼팔선이 든든하지요 

삼팔선이 든든하면 부자들 배가 든든하고요 


여기까지 쓰고 그 다음을 잇기가 어려워서였을까?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쓰다만 시」라고 붙였다. 그리고는 조금 더 긴 시 한 편을 썼다. 


미군이 없으면 삼팔선이 터지나요 삼팔선이 터지면 

대창에 찔린 개구락지처럼 든든하던 부자들 배도 터지나요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다 쓴 시」라고 붙였다. 


우리 사회의 상류층에 몹쓸 병이 돈 지 무척 오래 되었다. 의사들은 이 병을 후천성 반미 결핍증이라 부르는데, 일부에서는 이 병이 후천성이 아니라 선천성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이 한 때 반미의 열렬한 선구자(?)였던 점을 본다면 후천성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또,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자식들이 수직 감염되는 사례가 빈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후천성이던 이 병이 선천성 유전병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한 번 이 병에 걸리면 여간해서는 고쳐지지 않고, 반미의 '반'자만 보아도 화들짝 놀라고 흥분해서 날뛰게 된다. 이 병의 특징은 멀쩡한 두 발을 갖고서도 자신이 홀로 설 수 없다고 생각 - 증세가 심해지면 홀로 서서는 안 된다고까지 생각 - 하면서,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굳건히 내려서려는 건강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두들겨 패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병의 병원균은 뇌 속 깊이 침투하여 환자 스스로 병에 걸린 사실을 부인하게 만들기 때문에 환자들이 절대로 약을 복용하지 않고, 치료나 요양을 완강히 거부하게 만든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면서, 건강한 사람들이나 이 병에 걸렸다가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에 대해 살의에 가까운 적개심을 품게 되는 공격성 때문에 허준 같은 명의가 있다 해도 환자를 돌보기 어렵다.


-한홍구, "현대사 다시읽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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