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씨의 프레이저보고서 영상에 대한 반박내용 추가했습니다.
역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객관적으로 보고 싶기때문에
반박영상 요약부분에는 개인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만
반박 영상을 본 의견을 얘기하자면
해당 영상의 내용 자체는 부정을 못하고 시각차이만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차이를 비판하는 논리가
슬플 정도로 너무나 다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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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보고서'
유투브에서 검색하시면 바로 볼수 있습니다.
짧게 내용을 요약하면
박정희의 치적으로 내세우는 경제발전계획은
사실은 박정희가 계획했던 경제발전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이 공산화 되는 것을 막기위한 미국의 계획아래 진행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에게 박정희가 신임을 얻은 것은
박정희의 친일 행동이 일본을 아시아 최우방국으로 생각했던 미국의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한국 고속경제성장의 이유
다수의 중장년츨은 한국의 경제의 이유를 박정희의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이라고 믿고 있음
그러나 박정희는 수출주도형 전략을 제시한 적 없다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상황
구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경제력 세계 50위
한국 100위 아래
미국의 케네디는 정권은
공산화의 이유가 가난한 국가경제에 있다고 보고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가난한 국가들에게 경제지원을 하기로 함
4.19 혁명 이후 남한의 사정이 어려워 보이자 긴급대책에 나섬
미국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조건으로 남한에 경제를 지원하기로 함
미국은 TF팀을 만들어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을 세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등장한 장면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갖고 있었음.
이 계획이 시행되었다면 경제개발의 주인공은 박정희가 아니라 장면이었을 것으로 예상함
그러나 직후 쿠데타 발생
케네디는 쿠데타의 주모자 박정희 조사
박정희-친일파, 공산주의자, 300명의 동료밀고후 혼자 살아남,
이러한 이후로 스네이크 박 '뱀같은 인간'이란 별명을 붙이고 긴장함.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미국에 의지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한국에 대한 지원을 계속
한국 태스크 포스팀 보고서 주요내용
1. 북한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2. 미국의 위신이 걸려있다
3. 특히 일본을 보호하는데 중요하다.
4. 경제 발전을 위해선 정부행정, 부패행정, 교육제도 개혁이 중요함
위 내용을 바탕으로 근대화, 경제화 전략을 수립
한국의 경제개발에 일본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보고 한일 양국에
국교정상화를 제안함.
일본 극우파는 한국을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장기적 목표로
적극적 경제지원을 약속함.
일본은 친일파였던 박정희는 뇌물을 준다면 그들이 원하는대로 움직여줄 인물로 판단.
1961년 7월 4일 박정희는 반공법 시행.
북한을 찬양했다는 누명을 씌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 판결
_실제로는 재일동포 북한 강제이송을 반대했던 인물
그러나 이를 계기로 미국과 일본에 어필하는데 성공
이후 미일 정상을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는
일본 극우파 인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함
나구모 육군중장-일제시대에 만주군 육성한 인물
"나구모 선생님께서 저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 극우파들은 박정희를 요정으로 초대
이자리에서 박정희는 일본말로
"혁명을 했을 때 일본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명치유신의 지사 - 조선침략의 선봉장들 -이토히로부미 등
이를 계기로 일본 극우파들의 지지를 얻고 검은 돈을 지원받음
1961년부터 65년까지 박정희의 공화당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은
6천6백만 달러다 (현재 약 2조1천억원) -CIA 보고서
이후 대일무역 적자가 크게 늘어남
케네디는 AID(국제개발처)를 만들어 친미국가의 경제발전을 지원하여
공산주의를 막기로 함
1961년 11월 14일 박정희 미국 방문
이자리에서 특별원조를 요청함
"우리는 경제개발 계획서를 작성중이다, 특별안정기금 2억5천만 달러를 지원해달라"
이미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알고 있던 케네디는
박정희가 미국 방문 전에 미대사를 통해 경고함
사무엘 버거
"그 경제개발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 몇 명의 경제학자들이 수작업 했다는 것을
미국은 이미 파악하고 있다."
송정범 경제기획원 부원장
"사실 1차 계획안은 통계의 미비와 작성 기술도 문제가 있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경제개발 계획을 수정하라고 요구함
1. 현실을 무시한 7.1% 성장률은 지나치게 높다
2. 수출전략이 없음을 지적 (박정희의 수출전략은 토끼털을 깍아 팔자는 정도였음)
3. 투자비가 드는 중공업은 무리라는 지적
1961년 박정희는 이 요구를 거부하고 경제성장 5개년 개발 계획을 그대로 진행함.
1962년 박정희 측근들이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사기를 쳐서 증권 파동을 일으킴
"박정희의 조카 사위 김종필은 사상 최대의 주가 조작을 저질러서
2천만에서 3천만 달러(현재 약 9천억원)를 벌어들였다- NSC 국가안보회의 보고서"
김형욱의 증언에 - 일부는 박정희에게 상납, 공화당 창당 자금, 야당 교랸작전에 사용
증권파동이 벌어진 후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기업들은 주식으로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 문제들을 완전히 극복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1962년 6월 화폐개혁 시행- 사전조사 없이 강제적으로 시행
자금 유통이 멈춰버려 경제 마비, 한국 전체가 대 혼란에 빠짐
전국 중소기업의 55%의 공장이 가동을 멈춤,
한미 버거대사 - "믿을 수 없을 만큼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
삼성 이병철 사장 박정희에게 충고
"세계적으로 통화개혁은 해만 남겼습니다. 성공한 예가 거의 없습니다"
박정희 왈
"경제인들 의견도 사전에 들을 걸 그랬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후 미국은 박정희에 대한 지지 정책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를 함
화폐개혁-예금동결을 해제하고
모든 정책에 대해 사전에 반드시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요구
박정희는 처음엔 이를 거부
미 사무엘 버거대사는 협박 " 당신이 더 이상 미국의 원조를 원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겠군"
이후 미국의 동의를 받아 경제정책을 해야하는 상황
이후 참모들을 미국의 뜻에 협조적인 인물로 대거 물갈이 함
참모들은 1차 계획을 대거 수정하라고 요구하자
박정희는 오히려 확대하겠다고 주장
그러자 미국은 1차 계획을 그대로 진행할 시에 경제원조 전액을 취소하겠다고 함.
1962년 11월 26일 신임 경제관리들이 1차 계획을 수정함.
미국은 비밀리에 구체적인 요구사항 전달
1. 종합기계제작소 같은 대규모 산업화 전략을 포기하라
2. 그리고 수출을 증대시키는 정책으로 전환하라
이후 경제원조를 무기로 미국의 핵심요구 사항을 그대로 반영하여
'수출주도형 경제 정책을 완성 시킴'
'사무엘 버거 대사' 우리는 그에게 통치의 기본을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세수정책 개혁 요구 - 박정희가 거부하자 9개월간 원조 중단 - 시행함 - 세수증대
환율 개혁 - 그동안 저평가 됐던 환율을 올리라고 요구, 박정희는 반대
- 미국은 환율 안정 1천만 달러와 식량 2십5만톤 지원 제안. 박정희 환율 개혁 수용
환율 개혁으로 수출 증대, 생상성 증대 효과를 나타남
박정희는 수출이 늘어나는 결과를 보자 이를 자신의 공적으로 포장함.
이후 박정희가 미국 상원의원들에게 뇌물 수수한 것이 발각되어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가 발생하고
박정희 정권에서는 이를 미국에 증언하려는 한때 측근이었던 김형욱 전 국회의원을 살해함.
이래도 박정희의 유신정권을 옹호 하실겁니까?
2부엔 어떤 내용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군사정권하의 대대적인 선전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으면 하네요
이 아래 부터는 해당 영상에 대한 반박을 담은
정규재 TV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부 18분
- 패널- 성신여대 김용직 교수 출연(새누리당 소속)
1) 프레이저보고서 영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인혁당 피해자 가족들이 출연해서 만든 단체이며
정치적 성향이 의심됨
2) 해당 영상은 프레이저 보고서의 내용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 프레이저 보고서는 오랜기간 한미관계를 집대성한 자료로
해당 영상은 단지 프레이저 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인용한 수준
3) 실제 프레이저 보고서에선 원조- 자문 등의 팩트만 기록되어 있을뿐
해당 영상에 나오는 박정희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없었다고 함
4) 박정희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은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나와있지 않다고 함
--> 여기까지는 '프레이저 보고서' 라는 제목을 왜 달았는지 비판하는 내용.
하지만 박정희가 친일파였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을 안함.
즉 실제 '프레이저 보고서'의 일부 내용만을 채용하였기에
제목을 '프레이저 보고서'라고 달면 안된다는 주장과
해당 영상을 만든 의도가 선거에 맞춰 악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을 비판
2부 21분
1) 프레이저 보고서 작성 당시 한미관계 관계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
김용직 교수의 의견
당시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의 화해를 위해 주한미군 감소 계획을 세운 것으로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줄어듬
여론을 위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인권 청문회를 주도하며 프레이저 보고서 작성
(보고서 내용에 인권갈등에 의한 편견에 의해 왜곡된 시각차이가 들어있을 수 있음)
2) 케네디의 한국 경제계획 개입 여부에 대한 의견
경제 계획에 대한 개입은 사실이나
해당 영상에선 미국이 한국을 착취하고 있는 것으로 상당부 과장되어 있다.
3) 해당 영상의 주장 요점중에 지적할 만한 점이 있는지 부탁
-->관점이 잘못되어 있다
박정희의 경제 개발 계획은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적인 모델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
미국의 경제 개발 계획에 대한 요구를 박정희가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경제 개발 계획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인 다른 나라도 있지만
성공한 것은 몇 나라 안됨.
포항제철 사례를 인용
-->포항제철은 미국이 반대했지만 성공한 케이스임
해당 영상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
미국의 노예처럼 된다고 표현한 것이 잘못이라는 내용
미국의 원조가 사실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미국의 원조로 국내 경제에 피해가 된 부분도 있다.
때문에 미국의 원조로 한국의 경제가 살아났다는 영상의 내용은 틀린 내용이다.
후반 5분동안 다시 제목에 대한 비판과 당부
3부 32분
패널 없이 진행
박정희 독재자 였다는 점 인정하지만
'박정희가 경제개발은 성공했지만 독재자 였다'는 논리는 틀린 시각이고
'박정희가 독재자여서 경제개발이 성공했다'
박정희의 계획을 다른 나라에서 따라하지만 성공못했다.
이는 박정희의 경제개발 성공은 우연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독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계속 이행하고 성공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때문에 박정희의 독재를 고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중국의 독재를 같이 고발해야 마땅하다.
지금 중국의 독재를 고발하지 않으면서
박정희의 독재를 고발하는 것은 정신적인 미숙아와 다를바 없다
'중국의 경제발전은 칭송하며 독재는 고발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종북이나 좌빨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정신분열이다
박정희가 독재였기 때문에 경제발전까지 깍아내리려고 한것이
우리나라 좌빨들의 일반적인 성격이었다.
그러나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박정희의 경제발전처럼 성공한 케이스가 없기 때문에
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공격못하고
박정희의 독재를 공격했음.
하지만 김정일, 김정은의 독재가 계속되어지자 박정희의 독재를
공격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경제발전을 깍아내리려는 시도를 함
그중 하나가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이승만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라는 내용이다.
계획은 이승만 시절에 다 만들어진 것이라 박정희는 무임승차 했을 뿐이다라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계획이 미리 만들어 졌다는 것인 인정하나
계획이 좋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 시절에 중화학공업이 성공한 것은 '바로 독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총칼로 찍어 눌렀기 때문에 중화학 공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즉 계획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 자신감을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불어 넣어준 사람이 박정희다"
이승만이나 장면의 리더십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이유가 박정희가 아니라 미국의 탓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가 경제 발전이 실패한 사례도 있지 않은가.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에서 한국경제성장의 공은 한국인의 몫이다 라는
내용이 있지만 해당 영상에는 빠져있다.
해당 영상의
"박정희의 경제수출 계획은 단지 돼지 물고기 수출하겠다는 수준일 뿐이었다"라는
내용을 비판
당시엔 달러가 급했기 때문에 당연한 정책이었다.
그 어려운 시절의 얘기를 그런식으로 표현하면 안된다.
케네디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케네디가 박정희를 의심했기때문에
박정희가 독일까지 가서 원조를 받아와야 했다.
케네디가 박정희를 의심한 이유는 박정희가 좌익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 가담자였다.
그때는 지적으로 좌익에 빠지기 쉬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도 일시적으로 좌익에 빠졌다.
그래도 국민을 위해서 자유경제 시장체제를 실현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 일으킬 당시 상황은
4.19 의거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였기 때문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정희는 국민투표에서 단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처음 등장은 총칼로 했지만 그 어떤 선거에서도 진적이 없다.
경제개발 당시 해외 파견된 근로자들의 고생, 수고와
포항제철 설립당시 사례를 얘기함
미국은 우리나라의 중공업을 반대했지만
우리나라는 중공업으로 일어섰다.
이후 5분은 근거나 논리 없이 단지 해당영상을 비방하는 내용이라 생략
- 해당 영상 제작자는 성폭행범 같은 비열한 인격의 소유자라고 함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비방